고층 빌딩이 늘어선 서울 도심의 도로 공기가 인체에 치명적일 정도로 고(高)농도로 오염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자동차 배출가스에 든 발암(發癌)물질 등 각종 대기오염 물질의 농도는 교통량이 적은 한적한 도심 도로보다 약 14배나 높았다. 이처럼 높은 오염도는 자동차가 뿜어낸 오염 물질이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높은 빌딩 숲 사이에 갇혀 고농도로 축적되는 이른바 '도시 협곡(峽谷·street canyon) 효과' 때문으로 분석됐다.

환경부는 3일 "자동차업계와 공동으로 전문 분석 기관에 용역을 의뢰해 서울 강남구 일대의 공기 오염도를 조사한 결과 강남구 테헤란로 일대 공기의 PAH(다환방향족탄화수소) 농도가 약 3㎞ 떨어진 교통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서초구 S중학교 인근 이면도로보다 훨씬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서울 강남구 일대 대기 중의 질소산화물 농도 현황, 서울 강남구 일대 도로변의 공기 오염도 비교.

PAH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센터(IARC)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인 벤젠 등 각종 발암물질과 신경 독성물질 등 인체에 특히 해로운 유해물질을 통칭하는 용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공동으로 이 연구를 한 볼트시뮬레이션(민간 전문 기관)의 김석철 박사는 "차량이 밀집한 도로 주변 공기가 나쁘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지만 얼마나 심각한지 실측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국민 건강을 위해 자동차 관리 대책을 시급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지난 3월 자동차에 대기오염도 측정기를 매단 채 사흘 동안 14~20차례 주행하는 방식으로 테헤란로 등지의 공기 오염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테헤란로에서는 PAH 농도가 공기 1㎥당 평균 221ng(나노그램·10억분의 1g)으로 측정돼 비교 지역인 서초구 S중학교 인근 이면도로(16ng)의 13.8배였다. 테헤란로 인근 고층 아파트 주민과 이 일대 직장인들은 그만큼 심각한 오염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폐·기관지 등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질소산화물(NOx) 농도 역시 테헤란로에서는 425ppb(피피비·10억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로 비교 지역인 S중학교 주변(88ppb)의 5배 정도였다. 환경부가 지난 2009년부터 수천억원의 예산을 투자해 '2014년까지 22ppb 수준으로 낮춘다'는 목표를 세운 이산화질소(NO₂) 농도도 테헤란로(121ppb)가 S중학교 주변 도로(68ppb)의 약 2배였다.

이처럼 서울 도심 도로의 공기 오염도가 극심한 것으로 측정되자 전문가들은 공기 오염 피해를 줄이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볼트시뮬레이션 김석철 박사는 "도로변 고층 빌딩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의 건강 피해를 줄이려면 바깥 공기를 사무실 안으로 끌어들여 환기하는 시설을 빌딩 옥상 등 높은 곳에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IST 이승복 박사는 "도로변 일대에 거주하는 주민은 자동차 통행량이 적은 시간대를 골라 실내 공기를 환기하고 평소에는 창문을 닫는 게 좋다"면서 "운전자들도 차창을 반드시 닫고 운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이번 연구 결과를 자동차 배출가스 관리 대책을 수립하는 기초 자료로 활용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