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컴백한 이효리는 스스로를 나쁜 여자라 명명하고 도도하게 눈을 치켜떴다. 드라마에선 신세경이 희대의 어장관리 '신공'을 펼치며 이슈에 중심에 섰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선 데이지가 개츠비의 순애보를 사뿐히 즈려밟고 아늑한 미래로 나아갔다.
여자들이 예사롭지 않다. 당당한 여자나 주관이 또렷한 여자는 이미 써먹을 만큼 써먹은 캐릭터지만 최근 대중문화 속 여자들은 거기서 한 발 더 움직이고 있다. SBS '야왕'의 수애가 살짝 선을 넘어서 시청자들의 공분을 산 가운데, 대중문화 속 여자들은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 좀 더 '실제 여자들'에 가까워지고 있다. 물론 여자의 힘이 세지니 남자들의 불만도 높아질 법하다.
요즘 TV, 음반, 영화 속 여자들. 어떻게 보고 있을까. OSEN의 영화담당 이혜린 기자, 방송담당 최나영 기자, 가요담당 박현민 기자가 '매우'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신세경의 어장관리, 솔직히 나도 이해된다
이혜린(이하 혜린) - 요즘 MBC '남자가 사랑할 때'의 신세경을 두고 말이 많은 것 같다. 어느 부분이 시청자들을 자극한건가.
최나영(이하 나영) - 극중 송승헌이 신세경에게 첫눈에 반해서 학비를 대주고, 어려운 가정형편도 일으켜세워준다. 신세경도 자연스럽게 송승헌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던 차에 좀 더 젊은 남자인 연우진이 나타난다. 연우진이 작업을 해오는데, 신세경이 넘어가는 거다.
혜린 - 보통 드라마에서 여주인공들은 '서브남'에게 안넘어가지 않나.(웃음)
나영 - 연우진은 서브남의 개념이 아니다. 송승헌만큼 매력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특히 극중 송승헌은 나이도 많고 결혼도 하고 싶어한다. 반면 연우진은 신세경의 꿈을 펼칠 수 있게 해준다.
혜린 - 그렇다면 넘어가는 게 당연한 건데, 왜 욕을 먹나.
나영 - 받아먹을 만큼 받아먹어놓고 다음 남자에게 홀라당 갔다고 보는 거다. 배은망덕하다는 거지.
혜린 - 그런데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지 않나. 난 이해되는데. 받은 게 많다고 노예처럼 잡혀살 순 없지 않나.
나영 - 당연한 선택이긴 하다. 받은 게 있으니까 되게 미안할 것 같긴 한데, 사실 나도 넘어갈 것 같긴 하다.(웃음)
혜린 - 이쯤에서 남자인 박현민 기자의 생각이 궁금하다.
박현민(이하 현민) - 여자들이 예전에 조강지처 버리는 드라마 보고 분노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사실 그 드라마 보고 여자들이 왜 흥분하나 이해 못했는데 남녀 역할이 바뀌어보니 이해된다. 실제 있을 법한 일이라서 더 싫다.(웃음)
혜린 - 그렇다고 신세경을 악역으로 보긴 어렵지 않나.
나영 - '남자가 사랑할 때'는 이야기 자체가 송승헌 중심이다. 시청자가 감정이입을 송승헌에게 한 상태에선 신세경이 나쁜 여자로 보일 수밖에 없다.
혜린 - 그런데 이상하다. '발리에서 생긴 일'이나 '시크릿가든'에서 하지원도 어장관리를 하지 않았나. 그런데 하지원은 인기가 많았다.
나영 - 사람들은 어장관리보다 민폐를 싫어하는 것 같다. 내가 두 남자를 쥐고 흔들 수는 있으나, 그들에게서 뭘 받아먹기 시작하면 페어하지 않다고 보는 거다. 하지원은 자립적인 이미지니까 호감을 산 것 같다. KBS '직장의 신'도 마찬가지다. 김혜수도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지만 민폐를 안끼치니까 인기가 좋은 거다.
혜린 - 제작진이 고민을 한다고 들었다. 송승헌이 극중 복수를 해야 할까. 끝까지 순애보로 남아야 할까.
나영 - 복수를 하면 지질해보이지 않을까. 그냥 지금의 송승헌이 멋있다.
현민 - 시청자는 복수를 원하지만, 그걸 안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을 홀릴 것 같다. 복수하는 척 하면서 쥐락펴락하지만 결국 그래도 알고보니 순애보였네, 가 되지 않을까.(웃음)
그래도 드센 미스김보다는 민폐녀 신세경이 낫다?
혜린 - 이같은 논란이 앞으로 멜로 여주인공의 캐릭터에 변화를 줄까. 남자 입장에선 가녀린 민폐녀 신세경이 낫나. 드센 독립녀 김혜수가 낫나.
현민 - 솔직히 남자들은 센 여자 별로 안좋아한다. 김혜수가 연기한 미스김 캐릭터도 사실 두 남자의 사랑을 받은 게 좀 오버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신기해하긴 하겠지. 하지만 사랑에 빠지진 않지 않을까. 나라면 연애는 신세경과 하겠다. 결혼은 김혜수랑 하겠지만. 남자도 현실적이니까.(웃음)
혜린 - 맙소사. 민폐녀가 낫다고?
나영 - 미스김 같은 캐릭터가 연애를 하면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면 멜로도 재밌지 않을까.
현민 - 아니 왜 굳이 귀찮게시리 변할때까지 기다리나. 이미 여성스러운 여자가 많은데.(웃음)
혜린 - 저런 시청자 때문에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 캐릭터가 짜증나는 거다.(웃음) 요즘 개봉작 '위대한 개츠비'에도 어장관리녀가 나온다. 데이지는 미천한 계급 출신의 개츠비와의 로맨스도 좋아하지만 바람둥이 남편이 제공하는 안락한 삶도 원한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남편을 사랑한 적 없지만 어쩔 수 없이 같이 산다고 철썩같이 믿는다. 그런데 데이지는 쿨하게 말한다. 두 남자 다 번갈아가며 사랑했다고. 국내 드라마였으면 이 장면, 어땠을까.
현민 - 사실 고전에서는 그런 여자가 많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폭풍의 언덕'도 그렇고. 그런 여자들이 우리나라 작품에선 악녀로 분류된다.
가요에서 멋있는 여자는 나쁜 여자인가
혜린 - 가요계는 어떤가. 비가 '나쁜 남자'를 외친지 무려 11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이효리가 '배드 걸스'를 냈다. 씨엘도 신곡 제목이 '나쁜 기집애'다.
나영 - 그런데 가요쪽에서는 '나쁜'이라는 개념이 다르게 쓰이는 것 같다. 당당한 것 아닌가. 세고 멋있는 모습인 것 같은데.
현민 - 여가수들이 부르는 나쁜 여자는 타깃이 명백히 여성인 것 같다. 사실 남자들은 별로 안좋아한다.
혜린 - 좋지 않나? 성공해서 돈도 잘 벌고. 시원하게 독설도 날려주고.(웃음)
현민 - 마조히스트는 좋아하겠지. 남자들은 나쁜 여자가 매력있다고 하지만 정작 만나는 건 귀여운 애들이다.
혜린 - 그럼 왜 여가수들은 갑자기 나빠진 건가. 남성팬을 버리는 건가.
나영 - 여자는 확실히 공략할 수 있다. 대리만족할 수 있으니까. 평소 못했던 걸 그녀들이 대신 해주니까 좋다. 사실 여자 입장에서 기존 예쁜 걸그룹 노래는 오글거린다. 애교 떨고 있는 건 보기 싫다.(웃음)
현민 - 이효리는 오랜만에 나와서 갑자기 청순하게 갈 순 없었을 것이다. 이미 소셜테이너로서 주관이 명확하고 똑부러지는 이미지를 얻었다. 지금은 '유고걸' 만큼의 깜찍함도 어색할 거다. 나쁜 여자를 선택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혜린 - 이효리도 센 이미지지만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나. 남자를 십분만에 꼬신다는 '텐미닛'도 좋아했던 것 같은데.
현민 - 다르다니까.(웃음) 섹시함으로 꼬셔주는데 당연히 '텐미닛'은 좋지. 다만 나쁜 여자는 수위 조절이 중요하다. 당당하고 독립적인 건 좋은데 채찍을 휘두르면 싫거든. 이효리는 남자들이 좋아하는 섹시함과 여자들이 좋아하는 당당함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에는 균형을 맞춘 것 같은데,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다.
혜린 - 해외에서는 남자들을 깨부수면서 오히려 여성팬들을 대거 확보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이효리도 성적 매력을 베이스로 하고 있어서 그런 팝스타들과는 노선이 좀 다른 것 같다. 국내에선 파괴적인 여자 아이콘이 나올 수 있을까.
현민 - 씨엘을 기대하고 있다. 아직 정확한 콘셉트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당함을 극대화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아직 오는 28일까지는 구체적으로 안알려줄 것 같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자꾸 남녀가 바뀌네
혜린 - 드라마는 앞으로 전망이 어떤가. 드라마 속 민폐녀는 줄어들까. 화제가 되고 있으니 더 늘진 않을까.
나영 - 줄어들 것이다. KBS '천명' 속 송지효는 되게 영특한 캐릭터로 사랑받고 있다. '직장의 신'의 미스김은 두말 할 것 없고. MBC '구가의서' 속 수지도 남자를 힐링해주는 역할이다.
현민 - 남자들의 마음에 안식처가 돼준다. 정말 좋다.
혜린 - 수지라서 좋은 거 아닌가.
나영 - 유약하게 '너만 바라봐'가 아니다. 영화 '늑대소년'도 좀 떠오른다.
혜린 - '늑대소년'의 박보영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자 아니었나.
현민 - 기분 나빴다. 보통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아니었나. 그걸 완전히 뒤집어놓은 거다. 남자 관객 입장에선 불쾌했다.
혜린 - 그렇게 치면 여자 관객들은 그동안 수십, 수백편의 영화를 보고 불쾌했다.(웃음) 어쨌든 여자 입장에선 그렇게 자기 욕망에 솔직한 여자들이 악녀로 분류되는 게 우려스럽긴 하다. 논란이 되니 여배우들도 싫어한다고 하던데. 광고도 떨어지고.
나영 - 핵심은 민폐냐, 아니냐다. 그게 호감과 비호감을 결정 짓는다.
현민 - 가요는 타깃이 어려서 그런지 현대 여성이 오히려 잘 그려지는 것 같은데, 드라마는 아무래도 틀이 있는 것 같다. 만약 드라마에서 포미닛의 '이름이 뭐예요' 같은 분위기가 연출된다면 마니아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혜린 - 그런데 지난해 발표된 미쓰에이의 '남자 없이 잘 살아'는 좀 이상했다. 월세를 자기 돈으로 낸다고 남자가 필요없다고 하는데, 요즘엔 남자친구를 월세 내주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여자는 없지 않나. 얼핏보면 페미니즘을 담은 가사인데, 오히려 전근대적으로 느껴졌다.
현민 - 당연한 얘기를 노래한다고는 느꼈지만 어쨌든 옳은 말이니까 좋았다.(웃음)
나영 - 영화에서도 변화는 감지된다. 최근 충무로에 돌고 있는 시나리오 속 여자들을 보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속 제니퍼 로렌스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혜린 - 섹스 중독? (웃음)
나영 - 야하기도 하다.(웃음) 자기 욕망에 충실하고, 그러면서도 남을 생각해주는 면에서 그 영화가 많이 떠올랐다. 다만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가 거의 없어서, 양념으로 밀려난 게 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