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근무할 때다. 아파트에서 된장국을 끓이면 이웃 프랑스 사람이 코를 벌름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당신 집에서 좋은 냄새가 나던데 재료가 뭐냐?" "콩을 발효시킨 음식이다." "언제 한번 맛보자." "좋다." 독일에 있는 동료에게 이 대화를 들려주면 "꿈같은 얘기"라며 부러워했다. 그쪽은 아파트에서 김치찌개를 끓이면 냄새 때문에 경찰이 달려온다고 했다. 프랑스 주재 외교관들은 프랑스 생활에 정들어 파리에서 한 번 더 근무하기를 바랐다.

▶90년대 후반 EU 회원국들은 단일 통화 출범을 앞두고 각 나라에서 1만~2만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다. 자기들이 조사해놓고 자기들이 깜짝 놀랐다. '외국인에게 가장 관대한 나라'는 독일, '가장 까칠한 나라'는 프랑스로 나왔다. 유럽인들도 프랑스라면 으레 '톨레랑스(관용)의 나라'로 알고 있었기에 충격이 컸다. 관광 대국 프랑스는 외국인에 대한 시민 의식이 조금 복잡한 듯 보였다.

▶스웨덴에 본부를 둔 '세계가치관조사 협회'가 지난해 81개국에서 설문조사를 했다. 삶의 지표를 다양하게 물었고, 외국인과 소수 인종에 대해 관용도를 측정했다. '다음 목록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이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가려내 주시겠습니까?' 주어진 목록은 '전과자' '다른 인종' '상습적 과음자' '감정적으로 욱하는 사람' '에이즈 보균자' '마약 중독자' '동성애자' 같은 순서로 수십 개가 열거돼 있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이 조사를 토대로 외국인 포용 정도만 떼어내 '인종차별 지도'를 만들었다. '다른 인종'과 이웃으로 살기 싫다고 대답한 비율을 따져 7단계로 인종차별 등급을 매겼다. 한국과 프랑스는 높은 소득과 교육 수준에도 불구하고 인종적 관용도가 낮은 나라로 꼽혔다. 외국인 관용도가 높은 순서로 따졌을 때 한국은 여섯째, 프랑스는 다섯째 등급에 속해 평균 이하였다. 한국인은 응답자 셋 중 하나가 다른 인종과 이웃이 되기 싫다고 했다.

▶한국 고대문화는 북방 유목민 문화와 남방 해양문화가 섞여 있다. '단일민족'은 역사와 부합되는 사실이 아니다. 단일민족이 '우수한 민족'이란 주장도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 군국주의가 내건 만세일계(萬世一系)나 나치가 주장한 아리안족 우월론은 역사의 날조다. 그것이 두 나라를 불행하게 했다. 경쟁력 있는 문화란 이질 문화가 섞이고 융합할 때 태어난다. 인종차별 지도에 한국이 오른 것은 우리가 세계화 시대에 철 지난 구시대 외투를 아직 입고 있다는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