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문화부 차장

최근 인터넷 포털 화면에서 한 광고를 봤다. "소설가 김영하가 번역한 정본 '위대한 개츠비'+영화 티켓+영문판 22,500원→5,700원(선착순)"이라고 적혀 있었다. 책 2권에 16일 개봉하는 '위대한 개츠비' 영화 표 1장까지, 모두 5700원이라는 얘기였다. '정본(定本)'과 '5700원'이라는 염가(廉價)가 목에 걸렸다.

개인적으로 소설가 김영하(45)와 미국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의 팬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날렵한 문체의 김영하와 '밉지 않은 속물'을 창조해내는 피츠제럴드의 소설 테크닉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저작권 만료로 60종 넘게 난립한 '위대한 개츠비' 번역본 중에서, 김영하 판본은 상당한 차이로 판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본'이란 단어는 적합할까.

신뢰받는 두 명의 번역가를 포함, 세 판본을 읽었다. 이번에 새로 번역한 김석희(61), 2003년 초역한 김욱동(65) 번역까지. 원문과 비교했을때 판단은, 김영하의 '위대한 개츠비'는 피츠제럴드보다 김영하가 먼저 보인다는 것이었다. 김영하의 표현을 빌리면 '젊은 개츠비'고, 기존 번역계 주장을 빌리면 번역이 아니라 '번안'이다.

여러 사례가 있지만, 대표적 예를 하나 들어보자. 살인과 불륜의 핵심 인물인 윌슨 부인이 자신의 크림색 야회복을 은근히 자랑하는 대목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의상을 칭찬하자, 그녀는 "It's just a crazy old thing. I just slip it on sometimes when I don't care what I look like"라고 대꾸한다. 김욱동은 "형편없는 헌 옷 나부랭이예요. 아무렇게나 보여도 괜찮을 때 가끔 걸치죠."(53쪽), 김석희는 "그냥 낡은 옷인걸요. 외모에 신경을 안 쓸 때 이따금 걸치는 옷이죠."(55쪽)인 데 반해, 김영하는 "이딴 걸 옷이라고 할 수 있나요. 유행 다 지난 건데. 대충 입어도 되는 날에나 편하게 걸치는 거지"(45쪽)라고 옮긴다.

얼핏 셋 다 비슷해 보이지만, 김영하는 없던 문장을 창조했다. "이딴 걸 옷이라고 할 수 있나요"라는 문장은 원문에 없다. 이어지는 뒤 대사도 훨씬 더 트렌디하다. 날렵한 건 사실이지만, 이 문장의 느낌이 1920년대의 피츠제럴드가 의도한 '개츠비'라고 할 수 있을까.

비유하자면 MSG 넣은 개츠비요, 성형미인 개츠비다. 분명 맛있는데, 원재료 맛은 애매해진. 지금까지 번역계의 불문율은 역자를 숨기고 원작자를 최대한 충실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옳고 그르다의 문제로 얘기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가독성 측면에서 김영하 번역은 탁월하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고래사냥'(송창식)을 자우림 노래로, '님과 함께'(남진)를 김범수 노래로 아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작가 잘못은 아니겠지만, '정본'이란 표현은 '무례'에 가깝다. 차라리 '김영하 스타일의 개츠비'라는 설명은 어땠을까. 피츠제럴드를 최대한 존중한 번역본을 읽고 싶은 독자도 적지는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