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표재민 기자] 드라마 ‘구가의 서’가 퓨전사극이라면 한번씩 거쳐가길 마련인 고증 부족, 역사 왜곡이라는 예상 가능한 논란을 교묘하게 피해갔다. 그것도 어린이들에게 존경하는 인물을 물었을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순신 장군을 재해석했음에도 역풍을 맞지 않고 오히려 찬사를 받고 있다.
MBC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는 반인반수 최강치(이승기 분)가 사람이 되는 과정을 그린 퓨전 사극. 지난 달 30일 방송된 8회는 강치가 숙적 조관웅(이성재 분)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는 과정에서 좌수사 이순신 장군(유동근 분)의 든든한 조력이 빛나는 내용이 그려졌다.
순신은 강치가 관웅에 대한 적개심과 복수에 불타 정신상태가 온전치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한 신뢰를 보였다. 순신은 관웅의 모략을 떨칠 수 있는 통쾌한 전략으로 강치를 구해냈다. 그리고 순신이 향후 강치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강치가 진짜 인간이 되는 과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개를 예감하게 했다.
특히 순신이 강치가 사람이 되기 위해 무형도관에 들어가면서 마지막 인사를 건네자 “사람으로 태어나서도 금수만도 못한 이들이 많다. 사람임을 규정 짓는 것은 본디 태생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고 따뜻한 위로를 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그야말로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퓨전 사극에 알맞게 각색해서 위인의 위용을 훼손시키지 않은 것. 사실 ‘구가의 서’의 이순신 활용은 역사왜곡 논란이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는 위험한 카드였다. 동시간대 방송 중인 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매회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이는 것과 비교하면 ‘구가의 서’의 실존인물 활용법은 현명했다.
이 드라마는 사람과 신수의 피가 섞인 강치가 고난과 역경을 뚫고 인간이 되고 사랑을 찾는 과정을 담는 판타지 로맨스 활극이다. 그야말로 현대적인 요소가 가미된 사극이다. 여기에 실존인물, 그것도 많은 국민이 추앙하는 이순신 장군을 곁드는 것은 위험천만한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구가의 서’는 이순신 장군의 위엄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동을 선사하는 인물로 표현하는 현명한 전개를 펼쳤다. 반인반수도 포용할 수 있는 인품과 천리를 바라볼 수 있는 지혜는 안방극장을 감동에 빠지게 만들었다.
물론 여기에는 이순신 장군 캐릭터를 멋들어지게 표현한 배우 유동근의 무게감 있는 연기가 큰 도움이 됐다. 유동근은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과 목소리로 안방극장에 묵직한 이순신의 향기를 전달했다. 위인을 위인답게 그린 제작진과 위인의 위엄을 깨뜨리지 않는 진중한 연기를 보여준 유동근 덕에 불필요한 잡음으로 드라마가 상처를 입는 일이 원천봉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