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지난달 29일 발표한 2014학년도 입학 전형안에서"수시 전형 서류 평가 시 예술·체육 활동을 통한 공동체 정신과 교육 환경, 교과 이수 충족 여부 등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예체능 교육이 인성·창의성 함양에 끼치는 긍정적 효과를 입시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이 같은 흐름을 두고 한편에선"특수목적고와 자율형공·사립고 재학생에게 유리한 정책"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초·중등 교육정보 공시 웹사이트'학교알리미'(www.schoolinfo.go.kr)에 따르면 서울 지역 과학고·외국어고·국제고·(전국단위모집)자율형사립고 등 11개교의 동아리 참여율은 106.1%(1인 1동아리 참여 시 100%)이지만 일반계 고교(이하'일반고')의 참여율은 56.5%에 불과하다. 일반고의 예체능 교육 활성화, 묘안은 없을까? 서울시교육청이'예체능 교육이 잘 이뤄지는 일반고'로 추천해준 관내 3개교(경복여고·서울고·인헌고) 사례에서 그 힌트를 찾았다.
◇'예능 교육은 비싸다' 선입견부터 버려야
흔히 '음악이나 미술을 가르치려면 악기나 재료 구입에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일반고 예산으로는 무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천 서울고 교장의 생각은 좀 다르다. "학교와 교사의 열정과 헌신만 있으면 일반고에서도 얼마든지 예능 교육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주장. 실제로 서울고는 정규 음악 시간을 활용해 1년생에겐 리코더를, 2년생에겐 기타를 각각 가르친다. 학생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구입 부담이 적은 리코더를 활용했고 기타는 학교 측이 지원했다.
경복여고 역시 지난 3월 자체 예산으로 기타 40대를 구입, 1·2년생을 대상으로 매주 1시간씩 창의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해 기타 수업을 진행한다. 6명씩 조를 나누고 기타 칠 줄 아는 학생을 조장으로 임명, 조원들을 이끌며 리더십과 협동심을 기르도록 했다. 지도는 빼어난 기타 연주 실력 덕에 교내에서 '기타리스트'로 통하는 박태정 교사(미술)가 맡았다. 박 교사는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 △기본 연주법 △국내·해외 유명 연주 동영상 시청 △최신 유행곡 연주 등으로 다양한 수업을 마련했다. 지윤주(2년)양은 "음색이 좋아 기타를 사놓고도 배우러 갈 시간이 없어 집에 모셔뒀는데 학교에서 배울 기회가 생겨 좋다"며 "요즘은 공부하다 쉴 때 기타 연습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말했다. 문흥식 경복여고 교장은 "예능 교육은 국어·영어·수학 중심 교육에 지친 아이들의 숨통을 열어주는 시간"이라며 "평가 여부를 떠나 기타 수업이 학생들에게 '삶의 청량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교육과정, '기능'보다 '다양성'이 중요해
이은순 인헌고 교사(음악)는 "대학이 지원자의 예체능 활동 이력에 주목하는 건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갖췄느냐'가 아니라 '(예체능 활동을 통해) 얼마나 유의미하게 성장했느냐'를 보려는 것"이라며 "따라서 일반고의 예능 교육 역시 '기능'에 치우치기보다 '다양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헌고에서도 90개가 넘는 교내 동아리가 운영되고 있다. 그 중 절반가량은 예체능·취미 관련 동아리다.
"관현악반 1기 부장 출신 남학생이 올해 서강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어요.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좋아해 전공으로까지 고려했던 친구죠. 때마침 그 친구가 나온 중학교에서 전근 오신 선생님이 계셔서 여쭤보니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말수 적은 아이였다더군요. 음악적 기량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던 거죠. 관현악반을 만들며 그 아이에게 부장을 맡겼는데 축제·입학식·졸업식 등 교내 행사는 물론, 거리 공연 등 자신의 연주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참석하더라고요. 내성적이던 성격도 적극적으로 바뀌었죠. 고교 성적은 '서울 소재 대학 입학이 가능한' 정도였지만 이 같은 활동 내역이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인헌고 관현악부원과 합창부원으로 각각 활동 중인 양성실(3년)양과 유보경(2년)양은 "처음엔 공부에 방해 될까 걱정도 했지만 음악 하며 느끼는 즐거움을 친구나 지역 주민과 함께할 수 있게 돼 웃는 시간이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두 학생 모두 동아리 활동을 병행하면서도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인헌고 교정 곳곳엔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역시 교내 동아리인 미술게릴라반이 지난해부터 진행해 온 프로젝트 수업 '학교 공간 다시 꾸미기'의 결과물이다. 회원들은 1년여간 건축 전문가와 함께 게시판·휴게공간·조명 등을 새롭게 디자인, 삭막했던 학교 공간을 화사하게 바꿔놨다. 이정임 지도교사(미술)는 "자신들이 설계한 공간이 하나둘 자리 잡는 걸 보며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도 한층 애정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네트워크 활용 시 발전 가능성 '무궁무진'
서울고는 지난달 10일 전교생·학부모·교사·동문이 함께하는 '봄 향기 가득한 서울고 음악회'를 개최했다. 총동문회 측 지원으로 서울고 출신 김용배 추계예술대 피아노과 교수(전 예술의전당 사장)가 기획과 해설을 맡고 역시 졸업생 출신 음악가들이 공연을 맡았다. 장천 교장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학생들의 거리감을 좁혀주고자 마련한 행사였는데 반응이 워낙 좋아 올가을엔 가곡 위주로 '낙엽과 함께하는 음악회'를 다시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고와 인헌고는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작은 음악회'도 연다. 이 행사엔 장르 구분도, 참가 자격 제한도 없다. 심중섭 서울고 교감에 따르면 "참가자는 실력을 뽐내고 청중은 이들을 응원하며 음악으로 하나 되는 시간"이다. 경복여고는 기타 수업을 학부모 교육 과정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문흥식 교장은 "일반고 예체능 교육이 정착되려면 학교와 학생, 학부모 모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