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부러워할지 모르는 서울대 교수도 당신과 똑같이 상처가 있다. 아니, 어쩌면 더 클 수도 있다. 시인 유안진(72) 서울대 명예교수는 하마터면 가마 안에서 태어날 뻔했다. 그의 고향은 경북 안동 길안면. 지금은 안동댐 건설로 물 밑에만 남은 마을이다. 집안의 첫 아이였던 시인의 출산이 임박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가마에 실려 30리 떨어진 친정을 찾았다. 버스는 꿈도 못 꾸는 두메산골이었고, 가난한 시댁은 어린 며느리의 해산을 돌볼 여유마저 없었다.

―가마에서 태어날 뻔했다는데.

"그렇게 가마 멀미까지 하며 어머니가 겨우 친정에 도착했는데, 외할아버지가 당장 돌아가라 호령을 했더란다. 네 남동생들이 곧 혼사를 치러야 하는데, 여기서 아이를 낳으면 우리 집안 정기(精氣)가 태어나는 아이에게로 간다고. 18세에 결혼한 어린 엄마는 너무너무 서러웠다고 했다. 그때 외증조 할머니가 살아계셨는데, 내일 날 밝으면 돌려보내자고 타협안을 내놨다. 나는 그날 밤 외증조 할머니 방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와 시인에게는 다행이지만, 외할아버지는 당혹스러웠겠다.

"반대다. 외할아버지는 안도했다. 계집아이였으니까. 정기는 아들에게만 간다는 거였다. 당혹스러운 건 어머니였다. 딸을 낳아 시댁으로 돌아간다는 건 면이 안 서는 일이었으니까. 어머니의 불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친가에서도 외가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인생. 우리 마을은 조선시대였다."

이 완고한 남존여비와 가부장이 지배하는 조선시대는 20년이 흘러도 끄떡없었다. 어머니가 서른아홉 나이로 막내 여동생을 낳자 할아버지는 문중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의 주제는 '유처취처(有妻娶妻)'. 어머니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아버지를 새장가 보내는 회의였다.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이유로.

달이 뜨면 시인의 증조할머니는 가족의 무병장수를 빌었다. 아직 어렸던 시인에게는“앉아서 밥상 받고, 일어서 호령하고, 걸어서 내 땅 밟게”해 달라고 축원했다. 물론 지금도 앉아서 밥상 받기는커녕 여전히 일어서서 밥상 준비해야 하는 처지다. 비록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그 할머니의 기도가, 할머니에 대한 추억과 기억들이 지금의 시인을 낳았다고 믿는다.

―정실 부인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았나.

"물론. 죄인이니까. 더 심했던 건 외할아버지였다. 문중회의에서 우리 외조부를 불렀다. 유처취처의 동의를 요구한 거지. 그런데 우리 외할아버지가 그러자고 하신 거다. 어떻게 남의 집안을 망하게 하느냐고. 내가 서른 넘어 미국으로 유학 가기 전까지, 어머니가 늘 하신 말씀이 있다. 네 외조부 돌아가시고 내가 울거든, 내 눈에 재를 집어넣어라. 아궁이 재가루를 가져와 집어넣어라. 그 정도로 부녀 관계가 안 좋았다."

경상도의 딸들은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는 농담이 있다. 이 완강한 가부장제에 투항하여 순종하거나 아니면 극단적 페미니스트로 저항하거나. 시인에게 후자는 답이 아니었다. 딸과 며느리에게는 가혹한 분이었지만, 손녀에게는 또 한없이 자상한 조부·외조부였으니까. "안진이가 사내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노"라는 섭섭한 꼬리표를 끝내 떼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천자문을 외워버린 영특한 손녀를 집안의 자랑으로 끼고 살았다. 어쩌면 시인이 교육심리와 아동보육을 전공한 것은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체험과 학문의 충돌, 아이러니다.

"내가 미국 유학 중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결국 어머니 눈에 재를 넣어드리지는 못했지(웃음). 요즘 시골에 내려가 특강을 하다 보면, 손주 햄버거 하나 사 주려고 경운기로 3시간을 달려 읍내에 다녀왔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만난다. 그 사랑이 어찌 지워지겠는가. 조부모가 있는 환경의 아이들은 인생의 풀코스를 알게 된다. 늙고, 아프고, 잔소리조차도 결국은 인생이라는 것을."

이날 2부 촬영인 '맛으로 읽는 책' 코너의 선택 요리는 메밀묵과 동치미였다. 시인의 증조할머니가 겨울밤 찾던 별미였다. 그는 문득 메밀과 시인이 닮은 것 같다고 했다.

TV조선‘북잇수다’유안진편 녹화현장. 왼쪽부터 표정훈, 어수웅, 유안진.

―메밀과 시인이라니.

"메밀은 오곡(五穀)에 포함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흉년의 구황식물이었을 뿐이지. 시 역시 직접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지는 않는다. 세상에 시인은 없어도 된다. 하지만 위기나 어려운 시절이 오면 가장 먼저 시가 이를 예고하고 경각심을 일깨우지 않는가. 시인을 '잠수함의 토끼'로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메밀은 박토에서 자라지만, 잎과 꽃에서부터 메밀 알까지 못 먹는 게 없다. 흉년에나 제 몫 하는 구황식품 같은 시와 정말 닮은 것 같다."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지 올해로 48년. 시인은 한결같이 자신을 '숙맥'으로 부른다. 녹두(菽)와 보리(麥)도 구별 못하는 바보. '지란지교를 꿈꾸며' '상처를 꽃으로' 등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아온 스타 시인에다 엘리트 서울대 교수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지나친 겸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시인은 헛똑똑이보다는 숙맥이 백번 낫다고 했다.

'맛으로 읽는 책'의 요리를 책임지는 맛객 김용철씨가 접시 위에 담은 메밀 씨앗을 건넨다. 겉은 세모꼴인데, 껍질을 까고 나니 신기하게도 둥근 알이 나온다. 둥근 세모꼴. 상처주고 상처받는 것이 우리네 뾰족한 삶이지만, 누구나 원하는 것은 둥글고 원만한 삶일 것이다. 시인은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유약승강강(柔弱勝强剛). 부드러움과 약함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결국 지는 게 이기는 거고, 숙맥으로 사는 게 이기는 거다. 유안진의 '메밀 시론' '숙맥 철학'이다.

채널 19·오늘 저녁 7시 50분

♣ 바로잡습니다

▲7일자 A23면 '여자인 내게 세상은 가혹했다…' 기사 중 경북 안동시 '길한면'을 '길안면'으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