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인 대학등록금으로 악명 높은 미국 사회에 ‘1만불(약 1100만원) 4년제 학사’ 과정이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텍사스·플로리다·위스콘신 등 일부 주(州)를 중심으로 점차 확산되는 중이다. 비결은 온라인 강좌 등을 통한 비용 절감이다. 미 대학생의 학자금 대출이 1조달러를 돌파한 상황에서 이런 새로운 시도가 고등교육에 새 이정표를 세울 수 있을지를 놓고 찬반론이 오간다. ‘반값 등록금’이 지난 대선 공약으로까지 이야기됐던 우리로서도 귀추가 주목되는 이야기다.
◆ 텍사스·플로리다·위스콘신 이어 캘리포니아도 “1만불 학사” 추진
미국 폭스뉴스는 지난 6일(현지시각) “1만불 학사 학위 제도가 여러 주지사 등 정치인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보도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주의원인 댄 로그는 최근 학사 학위 취득에 드는 비용을 1만불 이내로 줄이도록 하는 내용의 두 가지 법안을 내놨다. 로그 의원은 지난주 캘리포니아주의 대학생들에게 자신의 법안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고 폭스뉴스는 전했다.
지난달에는 릭 스콧 플로리다 주지사가 “23개의 주립 고등교육기관들이 조만간 1만불짜리 4년제 학사학위 제도를 도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텍사스와 위스콘신 등 다른 주에서는 이미 이런 제도를 추진해 왔다.
◆ 빌 게이츠 “1년 대학 학비, 2000달러 가능” 강연에서 영감
미국에서 ‘1만불 학사’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1년. 고등교육의 새로운 캠페인처럼 시작됐다. 미국 시사잡지 내셔널리뷰 작년 12월호에 따르면, 당시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와 릭 스콧 플로리다 주지사,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 등이 선도적으로 도입을 추진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인물은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
그에 앞서 아이디어를 처음 공론화한 사람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었다. 그는 2010년 한 콘퍼런스에서 “온라인 강의 등 기술 개발을 통해 학생들의 학비를 1년에 2000달러 선으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강연에서 영감을 얻는 페리 주지사는 지난해 1만불 학사학위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릭 스콧 플로리다 주지사가 “주립대학 학사 학위가 1만달러 이하로 내려가길 바란다”면서 이런 움직임에 동참했다.
대학들의 호응도 이어졌다. 내셔널리뷰는 “텍사스 주 내에 있는 10개 대학이 1만달러 학사 학위 프로그램 개발에 서명했고, 플로리다 주에서는 전체 23개 4년제 대학 중 12개 대학이 이런 프로그램 개발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서명했다”고 전했다.
1만불 학사학위 프로그램 제안은 대학가에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비싼 대학 학비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미국 국립 교육통계센터(NCES)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평균 가계 소득은 2006~2011년 사이 7% 줄었는데, 같은 기간 4년제 공립대학의 평균 교육비용은 18% 넘게 증가했다.
2011년 기준으로 미국 4년제 공립대학의 1년 학자금은 평균 1만3000달러, 사립대학의 1년 학자금 평균은 2011년 기준으로 3만3000달러(약 3608만5500원)로 추산됐다. 천문학적인 학비에 비해 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높지 않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메이 퓨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57%의 미국인은 “대학의 고등교육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학비로 내는 돈 만큼의 가치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온라인 교육 등 통한 경비절감 실험…찬반 엇갈려
현재 텍사스·플로리다 주의 대학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학비 절감을 추진하고 있다. 한 예로 텍사스주 샌 안토니오의 A&M대학에서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먼저 대학 수준의 수업을 수강한 후, 지역 전문대학에서 1년 동안 수업을 듣도록 하고 있다. 학사학위 과정을 마치는 마지막 해에만 A&M대학으로 와서 학위를 받으면 된다.
텍사스 주립대의 지방캠퍼스인 UTPB(University of Texas of the Permian Basin)는 실제로 학사 학위 과정을 마칠 때까지 1만달러가 드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다만 현재까지 이런 프로그램은 아주 소수의 전공 과정에 대해서만 진행되고 있다. A&M대학은 정보기술 전공, 텍사스 주립대학에서는 수학·화학·지리학·컴퓨터공학·정보시스템 전공에 대해서만 이런 과정을 개설했다.
학비 절감의 주요 비결 중 하나는 온라인 강좌 활용이다. 플로리다 대학 시스템(Florida College System)에 따르면 현재 플로리다 주 대학들의 재학생 중 20~25%가 온라인 강좌를 수강하고 있다.
하지만 1만불 학사 학위 운동을 두고 경계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교육의 질이 나빠질 수 있고, 학사 학위 남발로 인해 대학의 가치도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반면 만족스러움을 표시하는 이용자들도 있다. 미국 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소장인 아더 C.브룩스는 지난달 31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1만불 학사 과정 예찬론’을 폈다. 그는 이 글에서 “학사학위부터 박사학위 과정을 모두 온라인으로 마치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고, 빚도 전혀 지지 않았다”면서 “학사과정을 마치는 데에는 자동차 주차 스티커 값까지 합쳐서 1만달러가 들었다”고 했다. 그는 “여러 사람이 나의 대학 교육에 대해 조롱을 퍼붓긴 했지만, 이런 학사 과정을 통해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내 인생의 진로를 바꿀 수 있었다”면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플로리다 대학 시스템의 랜디 한나 총장은 내셔널리뷰와의 인터뷰에서 “(학비가 줄어든다고 해서)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프로그램은 개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플로리다주의 전문대학이 2011년에도 최고의 학교로 꼽혔고, 2013년 수상 후보군에도 올라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