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 팰팍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강연 큰 호응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문화재 환수 전문가’, ‘철거 전문 스님’, ‘약탈 문화재 추적자’….
혜문 스님의 별명은 이채롭다.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회색 가사를 걸친 승려의 신분과는 얼핏 무관해 보이지만 ‘문화재 제자리 찾기’ 대표라는 공식 직함이 시사하듯 부당하게 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찾는 과정은 스님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구도의 길이기도 하다.
요즘 혜문 스님은 미국의 보스턴미술관과 하버드대, 뉴욕과 워싱턴 일대의 박물관에 소장된 우리 문화재들을 파악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 문화재가 왜 제자리에 가야하는지 그 중요성을 알리는 강연회도 빽빽이 잡혀 있다. 지난 20일 미 동부에서 가장 오래된 한국사찰 뉴욕 원각사에서 강연법문을 연데 이어 24일엔 동포사회를 상대로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강연회가 펼쳐졌다. 27일엔 뉴저지 보리사에서 불자들을 위한 강연을 갖는다.
24일 뉴저지 팰리세이즈팍 파인프라자에서 열린 강연회에서는 뚝 떨어진 수은주에도 불구하고 기적과도 같았던 우리 문화재의 환수 과정과 잘못된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스님의 노력들이 생생하게 조명됐다.
뉴욕불교문화원(원장 김정광)이 주최한 강연회엔 보리사 회주 원영 스님과 이우성 한국문화원장과 지역사회 인사들 일반 청중들이 자리했다. 이우성 원장은 “우리 문화재를 찾는 것은 빼앗긴 영혼을 되찾는 일이라는 말도 한다. 혜문 스님의 강연을 통해 기성세대는 물론, 2세들에게 우리 역사와 민족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날 최한규 뉴욕불교문화원 이사의 사회로 진행된 강연에서 혜문 스님은 심각하고 지난했던 문화재 환수의 노력을 특유의 유머러스한 화술로 풀어나가 청중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강연 후엔 최근 출간한 저서 사인회도 열렸다. 강연의 주요 내용을 스님의 육성으로 소개한다.
◇ 대한민국 얼굴이 틀어졌다
“서울의 중심 광화문의 주작대로(현 세종로)는 맞은편 남산을 향해 경복궁의 축과 15도 틀어졌다. 광화문과 직선으로 뻗어있던 도로가 변형된 것이다. 일제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며 일부러 길을 틀어버렸다. 왜? 한민족이 영원히 망하라고 한 거다. 일본신을 모시는 조선신궁도 짓고 길 끝에는 황국신민의 서를 세워놓았다. 항상 묻는다. 대한민국 얼굴, 정치1번지가 틀어졌는데 바로잡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게 보통 일이 아닌데 어떻게 하냐고 말한다. 항상 반문한다. 여러분의 자식이나 손자가 입이 살짝 삐뚤어져 있어도 그냥 살라고 할 거냐? 그냥 놔둬도 된다는 생각은 대한민국이 명예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살아도 그건 소용없다. 우리나라에 진정한 정치가와 사상가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광화문 사거리를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 명박산성 위의 이순신 장군
“2008년 100만 명이 광화문에서 촛불시위를 할 때 경찰이 이순신 동상 앞에 60여개의 컨테이너로 이층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명박산성’으로 불린 사진에서 의외의 이순신 장군을 만났다. 그날 이순신 장군은 조선시대 민란을 진압하는 관군 장수처럼 눈을 부릅뜬 채 명박산성 위에서 시위대에게 “즉각 해산하라 불복하는 자는 체포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내가 알던 이순신은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이 아니었을까? 내 마음 속의 이순신은 순간 의심의 대상이 되었고 이순신 동상의 5대 의혹을 제기한 것도 그 때문이다. 가짜는 가짜일뿐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가짜가 ‘가치있는 진실’은 되지 못한다. 거짓은 가고 진실이 바로 서는 날, 짝퉁 이순신 동상이 철거되고 정확한 고증을 토대로 한 진짜 이순신 동상이 세워질 것을 믿는다.“
◇ 일본신사 양식 청와대 대문 전통솟을대문으로!
원래 청와대는 경복궁의 일부였지만 일제의 국권 침탈 후 조선총독 관저로 지어진 것이다. 조선총독부 대문 사진에 있는 등롱(燈籠)이라는 석등 양식은 야스쿠니 신사를 흉내낸 거다. 그런데 청와대 대문을 새로 만들며 남산에 있던 조선총독부 사진을 참고하다 보니 신사의 석등 양식이 들어갔다고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 대문에 일본신사 양식이 말이나 되는가. 일제가 만든 창덕궁 앞 일본신사 석등은 철거를 요구해서 관철이 됐다. 그런데 왜 청와대 일본 석등은 철거되지 않는가. 아직도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는 건가. 누군가 용기있게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청와대에 일본식 정문이 남게 한 요인이다. 언젠가 청와대 대문을 철거해서 아름다운 우리네 전통솟을대문으로 만들어지는 날이 와야 한다.”
◇ 다보탑 돌사자 복원을 10원짜리 때문에 못한다고?
불국사 다보탑 하단에 위치한 돌사자를 아는가. 이 돌사자는 본래 4개로 탑의 네 귀퉁이에 있던 것인데 일제시대 3개를 일본놈들이 들고 갔다. 이건 현진건의 소설에도 나와 있다. 영국에 하나 팔렸고 도쿄 와코대학에 또 하나 있는 것을 확인했다. 남은 하나는 입 부위가 파손돼 안 훔쳐갔는데 이상한 건 이 돌사자가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훔쳐간 걸 들킬까봐 그랬다는 말도 있고 멋대로 위치를 바꿔놓은 거다. 강력하게 항의했다. 돌사자가 한 개만 남았어도 바로 이것이 일본이 조선에서 행한 야만적 행위의 증거로 삼는 교육 가치로 활용해야 하는 게 아니냐. 문화재청도 2012년 3월 받아들여서 원래 자리로 옮겨놓기로 했는데 며칠 뒤 전화가 오더라. 이걸 옮겨놓으면 다보탑 그림이 있는 10원짜리 동전을 전부 바꿔야 하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거다. 그래서 대체 10원짜리가 몇 갠데 못 바꾸냐고 물었더니 75억 개가 돌아다닌다고 해서 잠깐 기가 죽었다.(웃음) 이걸 다시 찍는다고 하면 세금 헛돈 쓴다고 손가락질할텐데 어떡하냐고 하는데, 틀린 것을 바로 잡는 일을 10원짜리 하나 때문에 못 한다고 하는건 생각해볼 문제다. 돌사자는 당장 원래 자리로 옮기고 새로 찍는 10원짜리부터 시간을 갖고 교체하면 되는 거 아니냐.”
◇ 우체부 모자와 짚신이 문화재? 한심한 한일협정
일본이 한반도 식민 지배 후 뺏어간 문화재들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일례로 가야왕릉 백제왕릉은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해서 보물들을 가져갔고 공민왕릉에선 트럭 6대분을 싣고 갔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65년 한일협정을 하면서 고작 1332점의 ‘문화재’를 돌려받는 것으로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다는 문서에 서명을 했다. (슬라이드를 가리키며)그런데 돌려받은 문화재좀 봐라. 우체부 집배원 모자, 전주우체국장 소인, 짚신은 두 짝이라고 두 점으로 계산했다. 이때 돌려받은 3분의2가 지금 인사동에 가도 10만원이면 살 물건들이 허다하다. 이게 2004년까지 비밀문서로 공개되지 않았다. 내가 일본이 수탈해간 문화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걸 보고 아사히신문 기자가 와서 ‘한국인은 땡깡쟁이’라며 “조약은 조약 아니냐? 국가와 국가가 맺은 협정을 무시하고 달라고 떼쓰냐?”고 하더라. 그래서 이 사람을 데리고 가서 일본이 문화재라며 돌려준 우체부 모자와 짚신 등을 보여줬더니 자기도 기가막힌지 말없이 가만 있더라. 너무한것 아니냐? 한일협정으로 끝난 문제라고 생각한 패배의식에 계속 싸여 있었다면 조선왕조실록과 명성황후 국장 의궤가 환수되는 일은 불가능했을거다.”
◇ 영혼을 담은 계란은 바위도 깨뜨린다
2004년 일본에서 잠시 공부할 때 조선왕조실록 진본이 일본 도쿄대학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나라의 왕궁 일기장이 대체 왜 일본에 있을까 알아보기 시작했다. 2006년에 우리 것을 되찾자고 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손사래를 쳤다. 도쿄대학을 상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지만 영혼이 담긴 계란은 바위도 깨뜨린다는 신념을 갖고 진실의 힘으로 밀어부쳤다. 정확히 93일만에 47권의 책이 돌아왔다. 이것은 한일협정 이후 최초로 돌아온 국보급 문화재이다. 그걸 돌려준다고 해서 일본에 갔더니 엉뚱한 사람들이 기자회견 하면서 “문화재를 돌려준 일본의 양심세력에 감사한다”고 하더라. 아니 일본이 자진해서 돌려준 것도 아니고 이걸 되찾기 위해 노력한 민간단체에게 감사해야지 엉뚱한 일본놈한테 감사하냐..그게 다 노예 근성이다. 그때부터 명성황후 국장도감 의궤를 찾을 때까지 일본만 70번을 다녀왔다. 명성황후 의궤 1205권은 일본 천황궁의 문을 열어 제치고 환수됐는데 이것은 일본에서도 역사적 사건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있다는 도쿄대학과 일본에서 가장 힘이 센 천황궁에서 승려 한 명이 찾아왔는데 여러분들이 못할 게 뭐가 있냐? 이처럼 엄청난 일들이 대대적으로 보도 안 된 이유가 있다. 명성황후 국장 의궤가 인천공항으로 돌아올 때 정부가 취타대 환영의식을 하면서도 모든 일반인을 통제했다. 이게 널리 알려지면 한일관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는 슬픈 기억이 있다.”
◇ 배트맨과 베토벤이 똑같나?
2009년 미국 뉴저지에서 석 달 간 영어도 배우고 우리 문화재에 관한 기록도 찾는 생활을 했다. 그때 카네기홀에 가서 연주회도 감상했는데 우연히 슈베르트의 ‘숭어’ 가 영어로 ‘trout'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단어를 찾아보니 송어였다. 아니, 송어는 민물고기이고 숭어(Gray Mullet)는 민물에도 살고 바다에도 사는데 슈베르트가 착각한 게 아니면 이게 어찌된 건가. 궁금증이 발동했다. 알고본즉 당시 어물전 사정에 어둡던 분들이 잘못 번역한 것이었다. ‘거울같은 강물에 숭어가 뛰노네~’ 하면서 학교다닐 때 누구나 배웠던 이 노래를 정확하게 불러줘야 할 게 아닌가. 교과부에 얘기했더니 “스님께서 물고기까지 신경쓰냐?”고 은근 타박이다. 그래서 대뜸 “배트맨하고 베토벤하고 같습니까?” 했더니 바로 알아듣더라.(웃음) 그래서 교과서도 수정하게 됐다. 잘못된 건 이렇게 바로 잡아야 하고 물건은 본래 있던 제자리로 가야 하는 게(還至本處)) 세상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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