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됐던 KBS2 수목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는 착한 남자와 옴므 파탈의 경계를 넘나드는 강마루(송중기)의 한때 목숨보다 사랑했던 여자 한재희(박시연)에 대한 복수극과 서은기(문채원)에 대한 순애보를 그렸다.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서 함께 자란 마루와 연상의 재희는 연인사이다. 방송국 기자가 된 재희는 한 재벌그룹의 비리를 캐다 제보자를 죽이게 된다. 마루는 재희에게 자수하라 권하지만 재희는 다시는 거지 같은 삶으로 되돌아가기 싫다며 이를 거부한다.
그러자 앞날이 보장된 촉망받던 의대생 마루는 재희의 살인죄를 대신 뒤집어씀으로써 자신이 가진 모든 희망을 내려놓는다. 5년간 복역하고 나온 마루는 제비족으로 살아가고 그 사이 재희는 그 재벌 회장의 아내가 돼 다른 세상의 삶을 살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재회하지만 재희는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마루를 배신하고 마루는 철저한 복수를 다짐하며 회장의 무남독녀 은기에게 접근해 재희를 옥죄간다.
지난 14일 첫방송된 SBS 새 월화드라마 '야왕'은 '착한 남자'와 참으로 많이 닮았다. 대통령 부인 다해(수애)의 비리를 수사하기 위해 특별검사팀이 꾸려지고 특별검사로 임명된 하류(권상우)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청와대에 들이닥친다.
그리고 다해와 하류 단 두사람만이 들어간 다해의 방에서 총성이 울리고 경호팀이 들이닥친 그 안에서는 권총을 사이에 두고 부둥켜안은 두사람의 누군가에게서 피가 흐른다. 시간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해는 유아시절 생활고로 아버지가 자살하고 어머니가 재가하면서 보육원에 맡겨진다. 여기서 그녀를 각별히 보살펴준 사람은 두 살 위의 하류. 하지만 12살 즈음 어머니가 나타나 다해를 데려가고 하류는 홀로 남겨진다.
어느덧 스물두살이 된 하류는 이미 죽은 지 3일된 어머니 곁에서 실신한 다해를 발견한다. 다해 어머니의 새 남자는 폭력적이었고 심지어는 어린 아이인 다해를 성폭행해온 인면수심의 패륜인간. 그래서 모녀는 그를 피해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숨어 지냈고 거기서 다해 어머니는 가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것.
하류는 통장을 털어 다해를 치료하고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러준 뒤 오갈 곳 없는 다해를 자신이 지내고 있는 비월승마클럽으로 데려온다. 마루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이복여동생 초코와 단둘이 사는 소년가장이지만 그나마 아버지가 남겨준 허름한 집 한 채는 있었던 그의 품으로 어느날 오빠의 폭력을 피해 도망가던 마을'얼짱 누나' 재희가 날아온다.
이렇게 마루는 재희의 보호자가 된다. 다해는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대학에 합격하고 하류는 호스트바에 나가며 그녀의 대학 뒷바라지를 한다. 두 사람은 딸 은별까지 낳지만 다해는 출세를 위해 보란 듯이 하류를 버리고 상류사회로 진출해 결국 영부인 자리에까지 오른다.
그러는 과정에서 다해는 자신을 찾아낸 양부를 칼로 찔러 살해한다. 하지만 하류는 그 죄를 숨겨주며 시체를 암매장한다. 이것도 '착한 남자'에서 마루와 재희의 설정과 비슷하다.
이렇게 '야왕'은 '착한 남자'와 많이 닮아있다. 게다가 박인권 만화의 원작을 브라운관에 옮겼다. 1회 8%, 2회 8.1%의 시청률로 경쟁작인 MBC '마의'와 KBS2 '학교 2013'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그래도 향후 시청률 상승이 기대되는 배경이다.
박인권 화백의 만화는 재미있다. 그래서 '야왕'은 박 화백의 원작만화로는 벌써 세 번째 드라마다. 전작들의 성적은 매우 좋았다. 지난 2007년 '쩐의 전쟁'이 첫회 시청률 16%를 기록한 뒤 평균시청률 30.7%로 끝마쳤고 3년전 방송된 두 번째 작품 '대물'도 첫회 18%로 작가의 이름값을 톡톡히 한 뒤 25%대로 마감했다.
인기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만큼 '야왕'도 1~2회 이후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다. 특히 첫회부터 숨돌릴 틈 없이 스피디하게 진행된 내용은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 그래서 향후 전개될 스토리가 1~2회에 이미 다 드러났음에도 다음 회가 기다려질 정도로 긴장감을 준다.
하지만 지나치게 두 주연배우에 편중된 드라마의 무게중심은 자칫 잘못하면 스토리 전개가 진부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충분한데다가 권상우의 연기는 나아졌다고는 하나 고칠 수 없는 발음의 한계는 몰입도를 방해하는 여전한 핸디캡이다. 1회 초반 강한 임팩트를 줬으며 제작발표회 때 수애가 인상깊었다고 지적한 장면인 청와대에서 하류가 다해에게 '그때 왜 나를 죽였어'라고 울부짖는 신은 좋은 예다.
수애의 연기는 여전히 훌륭하다. 하지만 이는 이미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명성황후의 퍼스트레이디다운 자태나, '님은 먼 곳에'의 시골아낙 순이에서 전쟁중인 베트남의 가수 써니의 억척스러운 모습, 그리고 드라마 '천일의 약속'의 청순가련형 이서연에서 충분히 봐왔던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나치게 원작에 충실하려 한 이유는 아마 재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자극적인 설정은 이미 통속영화에서 충분히 봐온 진부한 스토리이기에 신선도는 떨어지는 대신 안방극장으로서는 지나치게 선정적이지 않느냐는 우려를 낳는다.
박인권 화백의 만화는 스포츠신문을 통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런 만큼 주인공의 이름인 하류와 맞닿아 있다. 다해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돈을 벌자고 부잣집 친구의 동생 가정교사로 취업하려 하지만 그 어머니로부터 무시당하자마자 좌절해 단란주점에 취업하려 한다는 점이나 다해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하류가 호스트바에 취직하는 점, 특히 다해가 어렸을 때부터 양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설정 등은 어디선가 많이 봐온 내용 같지 않은가?
또한 백도훈(정윤호)이 다해의 잃어버린 구두 한 짝을 찾아주는 설정은 어쩐지 '마의'에서 백광현(조승우)이 강지녕(이요원)의 한쪽 발에 짚신을 신겨주는 장면과 교차된다. 원작만화에서는 극적인 요소가 될 수 있지만 지상파 용으로 지나치게 극적인 장치를 한꺼번에 녹여냈다는 억지가 느껴진다. 케이블TV라면 모를까.
특히 하류를 면접하는 호스트바 실장이 '물건' 운운하며 주요부위를 치는 모습은 등급과는 상관 없을지 몰라도 안방극장에서 보기에는 낯뜨겁다.
기둥줄거리는 이미 원작을 통해 널리 알려져있는데다가 1~2회 방송만으로도 뼈대는 거의 대부분 드러났다. 앞으로 이 드라마가 '쩐의 전쟁'과 '대물'을 뛰어넘을지, 또한 '마의'와 '학교 2013'의 텃세를 이겨낼 수 있을지, 작가의 디테일 묘사와 더불어 감독의 역동적이고 섬세한 연출력이 관건인 대목이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입력 2013.01.1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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