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8시 30분 제주시 이호동 제주도 수퍼마켓협동조합 물류센터. 직원들이 물류창고 앞에 줄지어 서 있는 4.5t 화물트럭에 방울토마토와 사과, 당근 등 채소와 과일 등을 차곡차곡 실었다. 짐을 다 실은 트럭들은 곧 읍·면 골목골목에 있는 수퍼마켓을 향해 일제히 출발했다.
전국적으로 골목 상권과 대형 마트가 대립하는 가운데, 지역 골목 상권의 집합체인 제주도 수퍼마켓협동조합은 대기업 못지않은 물류 시스템 등을 갖추고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다. 제주도 내 300여개 수퍼마켓이 회원인 수퍼마켓조합은 2011년 359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지난해에도 365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국 53개 수퍼마켓조합 가운데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제주도에 기업형 수퍼마켓(SSM)이 단 1곳도 입점하지 못한 것도 조합의 경쟁력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제주대 김형길 경영학과 교수는 "강력한 조합이 있기 때문에 영세 수퍼마켓이 하나로마트나 편의점 체인의 도전에도 견디는 것"이라고 했다.
제주도 수퍼마켓조합은 지난 1989년 제주 지역 영세 상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전국에서 처음 설립됐다. 점포 면적이 100㎡ 이하인 소규모 판매점이 70%로, 전형적인 골목 상권의 결합체다. 그런 제주도 수퍼마켓조합이 이만한 성과를 낸 것은 신선 식품을 저장·포장할 수 있는 물류센터와 골목 수퍼마켓 문 앞까지 상품을 배달해주는 원스톱 배송 시스템을 확보하고, 자체 브랜드(Private Brand) 상품을 개발한 덕분이었다.
조합은 제주시 이호동에 2개의 물류센터와 35대의 배송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연면적 3841㎡의 제1물류센터를 완공·운영하면서 매출액이 160억원대에서 290억원대로 늘었고, 2009년 냉동시설을 갖춘 연면적 1521㎡의 제2물류센터를 개소하면서 2010년 매출액이 350억원대로 증가했다.
조병선 제주도수퍼마켓조합 이사장은 "전국 53개 수퍼마켓협동조합 가운데 20여곳이 물류센터를 운영하지만 물류센터에서 취급하는 7000여종의 모든 상품을 소매점 수퍼마켓까지 직접 배달하는 곳은 제주도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이런 시스템 덕에 읍·면 지역에 있는 소형 수퍼마켓들은 전날 주문한 신선채소와 과일을 당일에 판매할 수 있다.
일선 수퍼마켓에서 취급하는 품목의 40%가 조합 물류센터를 거친 제품들이다. 조합이 재료를 대량으로 공동 구매하기 때문에 단가도 최소 15% 이상 낮아진다. 쌀과 우유, 건어물, 화장지, 토마토, 계란 등 20여종 자체 브랜드(PB) 상품도 조합의 경쟁력을 높였다. 조병선 이사장은 "PB 제품은 소비자 가격을 10~20% 낮춰 대형마트와 겨뤄도 가격 경쟁력이 있다"며 "회원 수퍼마켓은 가격 경쟁력을 얻고, 소비자는 싼 가격에 상품을 구입하고,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도 낸다"고 말했다.
인구 57만명인 제주도에 대형 마트는 7개이고, 수퍼마켓의 최대 경쟁자인 지역 농협 운영 하나로마트는 50여곳에 이른다. 여기에 대기업이 운영하는 24시간 편의점도 600여개에 달한다. 이들은 수퍼마켓조합이라는 강력한 '골목 상권'과의 경쟁 때문에 영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전계하 조합 상무는 "대형마트 7곳 중 2곳을 빼면 모두 적자"라며 "편의점도 100여곳이 적자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은 가입금 100만원과 출자금 300만원 이상을 내는 정회원(회비 월 3만원) 220곳과 연간 12만원을 내는 준회원 80여곳으로 구성돼 있다. 조합은 미가입점인 도내 700여곳의 수퍼마켓을 회원으로 끌어안기 위해 회원 가입비 인하 등을 고려 중이다. 전문가들은 제주 특산물을 PB제품으로 개발해 다른 지역까지 판로를 확대하고, 택배 시스템을 갖추면 경쟁력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