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조직 '범서방파'의 두목 김태촌(64·사진)씨가 지난 5일 새벽 패혈증에 따른 심장마비로 숨졌다.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진 그의 빈소에는 5·6일 이틀간 1000명 넘는 조문객이 다녀갔다. 검은 양복을 입은 30대 남성들이 조문객을 맞으면서 "형님, 오셨습니까"라며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 150여명이 빈소 주변에 배치됐다.
김씨는 라이벌이던 조양은(63·양은이파 전 두목)씨와 함께 우리나라 조폭(조직폭력배)의 대명사처럼 불렸다. 그가 조폭 세계에서 유명해진 건 서울 명동과 무교동 일대 유흥업소 이권(利權)을 놓고 조폭들 간 아귀다툼이 본격화한 1970년대 초·중반쯤부터다. 당시 가장 세력이 큰 폭력조직은 '신상사'라는 별명을 가진 신상현(79)씨의 신상사파였고, 호남 출신의 오종철·박종석씨를 두목으로 한 오종철파와 박종석파(일명 번개파)가 이권에 눈독을 들이던 때였다.
1975년 초 오종철파의 행동대장 격이던 조양은씨가 서울 충무로 1가에 있던 사보이호텔에서 신년회를 하고 있던 신상사파 조직원들을 생선회칼과 야구방망이 등으로 폭행하면서(사보이호텔 사건), 전쟁이 시작됐다. 이 일로 신상사파가 내리막을 걷자, 박종석파(번개파)의 행동대장 격이던 김씨도 뛰어들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김씨는 1976년 서울 무교동 엠파이어호텔 후문 주차장에서 조씨의 보스이던 오종철씨를 습격해 불구로 만들었다.
이 일로 '피의 보복'을 다짐한 조씨와 김씨 간 싸움은 조폭 세계에선 '3년 전쟁'으로 불린다. 조씨가 자서전 '어둠 속에 솟구치는 불빛'에서 그렇게 썼다. '실력'을 과시한 김씨는 번개파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 조직인 서방파(서방은 김씨가 살던 광주광역시의 지명)를 결성해 두목이 됐고, 조씨 역시 양은이파를 결성했다.
서방파와 양은이파는 나중에 광주에서 상경한 또 다른 폭력배 이동재씨가 만든 'OB파'와 더불어 1970~1980년대 조폭의 판도를 좌우한 '3대 패밀리'로 불렸다. 이들이 부상하면서 조폭 간 세력 다툼 사건 때마다 생선회칼, 쇠파이프 같은 흉기들이 빠짐없이 등장했다는 게 수사 관계자들의 말이다. 대표적으로 1986년엔 서방파의 방계 조직인 '맘보파' 조직원 4명이 경쟁 조직 폭력배의 흉기에 난자당해 숨진 서진룸살롱 사건이 있었다.
1976년 5월 신민당 각목전당대회 사건 등 정치에도 개입한(1977년 자수) 김씨는 교도소에 있으면서도 10년 넘게 '보스'로 위세를 떨쳤지만,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을 계기로 급격히 영향력을 잃었다고 검찰 관계자들은 말한다. 1990년 5월 형집행정지로 출소한 상태에서 이권에 개입한 혐의를 받던 김씨를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의 조승식 검사(전 대검 강력부장)가 실탄을 장전한 권총을 차고 사우나에서 직접 검거하는 일도 있었다.
2005년 출소한 김씨는 교도관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1년 만에 다시 수감됐고, 2007년엔 배우 권상우씨를 협박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선고를 받았다. 2006년부터는 당뇨와 저혈압으로 인한 심장질환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경찰의 조사를 받던 2011년 말 갑상샘 치료를 위해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으나, 작년 3월부터 의식불명 상태에서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중환자실에 있었다. 검·경에 따르면 김씨가 교도소·소년원 신세를 진 것은 13번이며, 감옥에서만 20년 가까이 보냈다고 한다. 김씨가 구속과 출소를 반복하는 동안 그의 폭력조직 '범서방파'는 쇠락해 현재 이름만 남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