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에 대하여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김경숙 옮김|사이|252쪽|1만3000원
심호흡 한 번 하고 세네카를 읽는다. 2000년 전 로마 철학자가 들려주는 화(火)에 대한 이야기. 반가우면서 씁쓸하다. 화를 다스리는 지혜의 동아줄을 잡은 것 같아 기쁜데, 여전히 화가 끓어 넘치는 세상에 늙은 철학이 무슨 쓸모인가 하는 낭패감이 치받는 것이다. 좀 더 책장을 넘기면 그런 의심을 눌러주는 문장이 눈에 잡힌다.
"하지만 때로는 질책이 필요하지 않은가요?"라고 동생 노바투스가 묻는다. 서간집 형식인 이 책에서 형 세네카는 답한다.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질책이어야 한다. 꾸짖되 화를 내서는 안 된다. 화는 마치 퇴각 신호를 무시하는 병사처럼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부하일 것이다. 미덕은 악덕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되며 그 자체로 충분하다."
세네카는 화를 '어떤 악덕보다 비천하고 광포한 격정'으로 정의한다. 재갈이 물려 있지 않은 야생마인 셈이다. 벌을 주는 자가 화를 내는 것만큼 부적절한 일도 없다. 왜냐하면 고심 끝에 내리는 징벌이 교정에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노예에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내가 지금 화가 나기 때문에 너를 매질하는 것을 나중으로 미루겠다."
'화에 대하여'는 세네카가 코르시카 섬에 유배된 8년 동안 쓴 여러 저술 중 하나다. 소의 잔등처럼 부드럽게 살았다면 이런 글이 나왔을까.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의 부름을 받아 로마로 돌아온 세네카는 열두 살이던 네로의 가정교사가 된다. 네로가 황제가 되고 나서도 10년간 곁에서 섬겼지만, 네로는 그에게 가족이 보는 앞에서 자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세네카는 아무 저항 없이 혈관을 끊고 독배를 들었다.
마음의 평온을 잃지 않은 세네카의 최후는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철학적 죽음의 상징이다. 그는 화도 철학의 문제, 즉 '마음의 질병'으로 바라보았다. "화는 그 기반이 튼튼하지 않다. 바람처럼 공허하다. 너무 성급하고 무모해서 자기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화를 내어 승리하는 것은 결국 지는 것"이라고 세네카는 말한다.
세월을 타지 않는 책이다. 우리도 온통 성난 사회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세네카는 화에 대한 전략으로 평정심을 이야기한다. "매일 고요한 명상을 통해 미리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이 뜬구름처럼 들리는 게 한계다.
하지만 "화가 났을 때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조언은 실용적이다. 화난 얼굴은 추악하다. 좋지도 않은 일에 귀한 삶을 얼마나 낭비하고 있나. 화를 내며 보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