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의 최대 위기는 실버 민주주의이다."
요즘 일본에선 정치가 전체 국민보다 실버 세대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60세 이상 실버 세대가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80년 19%(1538만명)에서 2010년 38%(3953만명)까지 증가하면서 정치권은 실버 세대 눈치만 본다는 것이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투표에도 적극적이다. 1980년 실버 세대가 전체 투표자 중 차지하는 비율은 19%였다. 2010년엔 이 비율이 45%까지 치솟았다.
반면 20~30대가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80년 45%(3641만명)에서 2010년 30%(3120만명)로 떨어졌다. 게다가 젊을수록 투표에 소극적이다. 20~30대의 전체 투표자 중 비율은 30년 전 42%에서 요즘은 22%로 반 토막이 됐다. 사정이 이러니 인구도 많고 투표율도 높은 실버 세대가 정권의 향방을 좌우해 일본을 '노인을 위한 나라'로 구조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이 실버 세대의 표를 의식하면서 나타난 현상이 연금·사회보장비의 세대 간 불공평이다. 일본 경제사회종합연구소의 세대별 연금 생애 수지(生涯收支)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27세 젊은이가 평생 부담하는 국민연금 보험료는 평균 1978만엔이지만, 지급받을 수 있는 평균 연금은 1265만엔이다. 713만엔 손해를 보는 것이다. 반면 62세인 실버 세대는 평생 보험료로 1436만엔을 내고 1938만엔을 받는다. 낸 돈보다 502만엔을 더 받는다.
고바야시 요헤이(小林庸平) 메이지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고령화율이 1% 증가할 때마다 초등학생 1명당 연간 보조금이 2000엔 정도 감소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이 표를 의식해 고령자 복지시설 투자를 늘리면서 학교 지원금을 줄이기 때문이다. 2010년 일본 유권자의 평균연령은 56세였지만 20년 후에는 60세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돼 세대 편중 정책은 더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2월 16일 총선에서 제3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일본유신회는 젊은 층의 지지 확대를 위해 복지제도의 세대 간 공평성 확보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현역 세대가 낸 세금과 연금보험료로 실버 세대의 연금을 충당하는 현행 방식을 탈피해, 자신이 낸 보험료만큼 연금을 받도록 하자는 정책을 제안했다. 또 특별상속세를 만들어 연금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일본에선 대부분 50~60대에 상속을 받는 만큼 실버 세대에 불리한 제도이다.
반면 자민당은 실버 세대를 겨냥한다. 자민당은 재원 부족을 이유로 주로 젊은 층에 혜택이 돌아가는 집권 민주당의 아동수당 정책 폐지를 이끌어 냈다. 대신 국채를 발행해 고속도로 등 토목사업에 200조엔 투자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고령자층이 많이 사는 지방에 인프라투자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실버 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자, 세대 간 격차 시정을 위해 투표권을 현행 20세 이상에서 18세 이상으로 낮추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26일 "세대격차 해소 방안으로 자녀를 둔 젊은 세대에 2표를 주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실버 세대는 "국민의 의무인 투표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않는 세대에 특권을 줄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어 도입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