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북쪽 '서현역 로데오 거리'. 약 3000㎡ 크기의 길쭉한 보행광장에 오후가 되자 액세서리, 옷 등을 실은 수레를 밀고 노점상들이 나타났다. 저녁 시간에는 떡볶이, 어묵 등 각종 음식을 파는 노점도 등장해 띄엄띄엄 자리를 잡았다. 8년째 애견용품을 판매하고 있는 송민정씨는 "예전에는 오전부터 노점들이 가득 메우고 거리를 망친다며 욕도 먹었지만, 요즘은 점포를 가진 상인들을 위해 출근을 늦추고 판매대 크기도 줄였다"고 했다.

10여년에 걸쳐 갈등과 반목을 거듭해 온 서현역 로데오 거리의 상인과 노점상들이 상생을 위해 손을 잡았다. 그동안 불법행위로 영업에 지장을 받은 상인들은 노점상을 인정해주고, 노점상들은 자율규제로 화답키로 했다. 이 일대 720여개 업소가 참여하고 있는 '서현역 상점가 상인회'의 윤현노(48) 총무는 "모두가 어려운 시절에는 서로 양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현역 일대는 분당 신도시의 중심상업지역이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특수를 고비로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상인과 노점상의 갈등은 깊어졌다. 인근에 새 상권이 들어서고 경기 침체에 시달렸다. 상인들의 위기의식은 커졌고, 노점상은 눈엣가시가 됐다. 한때 50여개까지 늘어난 노점상들은 단속에 맞서 숨바꼭질과 멱살잡이를 거듭하며 반발했다.

반목과 갈등을 이겨내고 상생 합의를 이끌어 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로데오 거리’의 상인과 노점상이 15일 서로 손을 맞잡아 보이고 있다.

단속은 효과를 얻지 못했고 서로에 대한 불만만 쌓여갔다. 그러다 2006년쯤부터 상생의 해법을 찾자는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상인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은표(47)씨 등이 주도적으로 나섰고 성남시도 힘을 보탰다.

그러나 오해와 진통이 적지 않았다. 자신들을 쫓아내려 한다고 생각한 일부 노점상들은 상인회 간부들에게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서로 마주앉는 자리가 늘어나면서 응어리가 풀어졌다. 이 일대 28개 노점상들로 구성된 '로데오 친목회'의 최상호(51) 대표는 "큰돈을 들여 점포를 세내고 있는 상인들의 영업권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확산됐다"고 했다.

상인·노점상 대표들은 지난 9일 "로데오 거리의 공동이익을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만들어냈다. 현재 28개인 노점상의 영업을 먹거리는 오후 4시부터, 잡화나 액세서리는 오후 2시부터 시작하고 매달 둘째 주 화요일은 쉬도록 했다. 판매대의 규격도 줄여 가로 2m, 세로 1.5m에 1개만 쓰도록 했다. 또 3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노점을 10개 이하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상인회와 노점상 대표들은 16일 성남시청에서 합의문 서명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또 앞으로 협의회를 구성해 합의 내용을 실천하고, 노점상들의 전업과 독립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이들이 만들어 낸 합의문에는 노점(露店) 대신에 한자의 뜻을 풀어 '이슬가게'를 쓴다. 해가 나면 이슬이 사라지듯이 노점에 머무르지 말고 자립하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