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소년'에서 야생에서 자라다 인간의 품에 안긴 늑대소년(송중기)은 철수라는 이름을 얻고 순이(박보영)에게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 하나하나 배운다. 거친 청년의 모습을 한 늑대소년을 젊은 여성이 훈육하는 모습은 '애완남' 판타지를 건드린다.

조성희 감독의 ‘늑대소년’은 오늘의 한국 대중영화가 여성 관객들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지 실감하게 합니다. ‘터프하면서도 귀엽지만 상처받은 마음을 가진 한 남자를 애완동물처럼 보살피게 된 한 여자의 스토리’란 여성들이라면 한번쯤 달콤하게 젖어볼만한 꿈처럼 보입니다. 이 영화 상영관에서 여성 관객들 반응은 남성 관객들과는 차원이 달라 보였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감동한 듯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여성도 있더군요.

늑대처럼 양육돼 ‘인간의 몸과 야수의 마음을 가진 불행한 늑대소년’의 이야기는 으스스하고 긴장감 있는 영화가 될 만한 소재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으스스하기는커녕 아름답고 달콤합니다. 비현실의 공간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동화처럼 환상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47년전, 1965년 쯤입니다. 폐병을 다스려 보려고 요양차 가족들과 한적한 시골 마을로 이사간 소녀 순이(박보영)는 컴컴한 어둠 속에 늑대처럼 숨어있는 늑대소년(송중기)을 발견합니다. 체온은 46도, 혈액형은 판정할 수 없습니다. 사람 말은 한 마디도 못하고 짐승 울음 같은 소리만 냅니다. 겉은 사람인데 속은 사람이 아닙니다.

'늑대소년'에서 한 마리 야생 늑대처럼 숲에 웅크린채 발견되는 늑대소년(송중기).

순이네는 이 괴상한 생명체를 숲에서 데려다 집에 머물게 하고 돌봅니다. 처음엔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사정이 달라집니다. 순이는 이 이상한 소년에게 자꾸만 마음이 쓰입니다. 소년이 인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모성(母性) 본능입니다.

순이는 이 늑대소년, 아니 ‘늑대청년’에게 ‘철수’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는 옷 입는 법, 글 읽고 쓰는 법 등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법들을 하나씩 가르쳐줍니다. 세상 사람 중 처음으로 자신을 향해 손 내밀어준 소녀에게 늑대소년은 애틋한 감정이 싹틉니다. 아버지 여의고 병마와 싸우면서 세상에 대해 마음을 닫아 놓았던 소녀 역시, 슬픈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 특별한 ‘남자’에게 이끌립니다.

소년이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슬픈 운명을 가진 존재이기에 둘의 사랑은 순탄치 않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져 소년에게 숨겨져 있던 위험한 본성이 드러나고, 소년은 마을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어 버립니다. 소녀를 좋아하는 또 다른 소년의 출현으로 순이와 늑대소년의 관계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맞습니다.

영화 ‘늑대소년’은 이 괴물영화같은 설정을 가지고 여성관객들을 겨냥해 가슴 뭉클한 첫사랑의 동화를 판타지처럼 빚어냅니다. 영화 곳곳마다 작심하고 여성들의 웃음과 감동을 이끌어내려는 대목들이 넘칩니다. 불행한 운명으로 사람의 손길도 못 받고 들판에서 자라난 탓에 고통스런 일을 겪는 늑대소년(그것도 요즘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송중기!)은 여성들 눈길을 단번에 붙들 만합니다. 장난기가 발동한 순이가 늑대소년 얼굴에 촌스런 화장을 해 주고 여자 한복을 입히고 깔깔대는 대목은 여자 관객들을 위한 팬서비스 처럼 보입니다.

'늑대소년'의 여주인공 순이(박보영). 폐병을 앓아 요양차 한적한 시골마을에 갔다가 늑대소년을 만난다. 불행한 운명의 늑대소년과 세상을 향해 마음을 닫고 있던 여성은 평생 잊을수 없는 소통을 시작한다.

영화속 남주인공은 야생동물의 살벌한 이미지보다는 애완견 시베리안 허스키 같은 느낌에 가깝습니다. 늑대처럼 네 발로 기어 다니고 낡은 스웨터를 입고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입으로 먹는 늑대청년은 “기다려!” “먹어” 등 순이의 명령을 잘도 듣습니다. “우리 철수 잘했다~”며 쓰다듬어 주면 좋아합니다. 순이가 극중에서 기타치며 부르는 “고마워요 내 손 잡아줘서 / 고마워요 내 눈 바라봐서/ 고마워요 내가 그리던 왕자님/ 이렇게 내 앞에 나타나줘서“라는 노래 가사처럼 ‘철수’에겐 왕자님의 멋진 이미지도 있습니다. 동시에 그는 애완동물처럼 귀여운 면도 있습니다. 이런 철수의 모습은 자기 주장하지 않고 여자의 기분을 맞춰주는 그런 남자를 가졌으면 하는 여성들 꿈, 즉 ‘애완남’ 판타지에 빠져들게 합니다.

2011년에는 ‘예쁜’ 연하남이 펫(pet)이 되어 연상의 여주인과 함께 산다는 설정의 영화 ‘너는 펫’이 개봉됐죠. 그에 앞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케이블TV에서는 여자 주인이 남자 펫과 함께 생활하는 ‘애완남 키우기-나는 펫’시리즈가 방송됐습니다. 인터넷 공간에는 애완남 되기를 바라는 남자들과 애완남을 ‘분양’받고 싶은 여자들이 소통하는 ‘애완남’ 관련 카페까지 있다고 합니다. 남성의 성(性)이 상품화되는 것은 아닌가 의심도 들기는 하지만, 남자를 인형처럼 소유하고 싶은 여성들 욕구가 전보다 커지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영화 ‘늑대소년’은 ‘목줄에 묶인 채 여주인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미남‘의 판타지를 채워주도록 꼼꼼히 계산된 영화 같습니다. 여성 관객들 사이에 “어디 늑대소년 같은 청년 없느냐”는 말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오로지 감독의 상상력과 창조 욕구로 시작된 작품이라기보다는 미남스타로 여성관객들 마음을 잡아보려는 계산이 깔린 기획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관객들 마음을 이만큼 어루만지는 영화란 흔한 건 아닙니다. 유치하게 웃기는게 한국 영화의 전문영역이라도 되는 듯 너도나도 코믹 액션에 몰두하는 상당수 우리 영화들에 비하면 ’늑대소년‘은 새롭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