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 인기를 얻으면서 많은 외국인이 "가사의 뜻이 뭐냐"며 궁금해한다고 한다. 영국 BBC 라디오는 "강남스타일의 가사 뜻을 제대로 알고 싶다"는 청취자의 요청이 잇따르자 얼마 전 노래 가사를 영어로 옮겨 시 낭송하듯 읽어주기도 했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한국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강남스타일 가사의 뜻이 뭐냐"고 물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우리가 영어를 공부하는 데 팝송 가사를 유용하게 쓰듯이 한국말을 배우려는 외국인들에게도 '강남스타일' 같은 유명 K팝은 좋은 교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기자는 외국인들에게 강남스타일 가사의 뜻까지 알려주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싸이가 만들었다는 그 가사에 그런 노력과 정성을 들일 정도로 가치가 있는 감성과 의미, 아름다움이 들어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강남스타일 열풍에서 거의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도 바로 이 점이다.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강남스타일의 가사다. 영국 일간 가디언지는 이를 두고 "한국의 빈부 격차 등 사회상을 풍자했다"고 했다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런 인상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일각에서 "제2의 '강남스타일'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까지 나왔던 싸이의 '라잇 나우' 가사는 이렇다. '웃기고 앉았네 아주 놀고 자빠졌네/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아주 생쇼를 하네//뺑뺑이 돌리고 안 봐도 비디오….'
"싸이의 매력은 직설화법과 B급 정서"라고 말하는 이들에겐 두 노래 모두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대중 가수와 가요는 그 시대를 관통하는 대중의 욕구와 불만을 해소해주는 방출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그런 시각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세계 각국 사람들이 이 노래들로 처음 한국말을 접하고, 그 가사를 갖고 한국어 공부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면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는 싸이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너무나 뜨거워 만질 수가 없어 사랑에 타버려 후끈한 걸(Girl)?'(소녀시대의 '지') '뒤집어지기 전에 제발 누가 날 좀 말려/선수인 척 폼만 잡는 어리버리한/넌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보기 좋게 차여'(2NE1의 '내가 제일 잘나가') '이 난장판에 헤이 끝판 왕 차례 헤이//오늘은 타락해 (미쳐 발악해) 가는 거야!'(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 세계인들이 유튜브를 통해 가장 많이 보고 듣는 한국 가요 톱10에 드는 노래들의 가사다.
시간과 국경을 뛰어넘는 팝 명곡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가사에 시대를 아우르는 정서와 품격·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로 시작하는 '가을편지'나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이라는 평을 듣는 비틀스의 '예스터데이' 같은 고전(古典)에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케이티 페리의 최신곡 '파이어워크'까지 그렇다. 또 가요의 가사는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 그 말을 국어로 택하고 있는 나라의 얼굴이나 다름없다. 가수는 가사를 통해 자신과 노래의 이미지·감정·주장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세계 각지의 팬들은 가사를 통해 가수와 그가 속한 나라를 대면하고 경험하기 때문이다. 싸이는 물론이고 제2, 제3의 싸이를 꿈꾸는 한국의 모든 뮤지션이 이제 어떤 '얼굴'로 세계의 팬들과 만나고 대화할지 진지하게 고민해 답을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