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에도 계곡물이 마르지 않는다 하여 이름 붙여진 사정동(沙井洞) 자락에 조선 도교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북창(北窓) 정렴(鄭 · 1506~1549) 선생의 묘소가 있었다. 묘소 앞으론 양주의 진산인 불곡산이 바라다보이는데 양주 백정이었던 임꺽정이 나고 자란 곳도 불곡산 아래라고 한다.
지난 6일 열린 '길 위의 인문학'은 허준(許浚)의 동의보감에도 영향을 끼쳤던 '용호비결(龍虎秘訣)'의 저자인 정렴 선생의 묘소에서 시작했다. 국립중앙도서관·조선일보·교보문고가 마련한 이번 탐방은 '임진강에 흐르는 인문학'을 주제로 경기 북부의 회암사지, 자운서원, 화석정, 윤관 묘소, 용미리 석불입상으로 이어졌다. 북창 선생의 14세손이기도 한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는 "북창 선생은 자기완성을 목표로 하는 도교, 선도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분"이라고 했다.
인도 승려 지공(至公)이 처음 지었다는 회암사지는 말 그대로 절터만 남아 있는 곳이다. 이색(李穡)의 '목은집(牧隱集)'이나 '천보산회암사수조기(天寶山檜巖寺修造記)'에 의하면 262칸의 건물에 15척의 불상이 7구, 10척의 관음상이 보관된 동양 최대의 사찰이었다고 한다. 박종기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는 "답사의 묘미는 있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없는 것을 보는 것에 있다"고 했다.
자운서원을 거쳐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이 시를 짓고 묵상을 위해 자주 찾았다는 화석정(花石亭)에 서자 아래로 임진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풍경에 단원들 모두 탄성을 자아냈다. 고려, 조선시대만 해도 교통의 요충지였던 이곳이 분단 이후 잊힌 강이 되었다며 모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윤관 선생의 묘소에 이어 용미리 석불입상 앞에서는 통일신라의 세련미나 조형미, 예술미와는 다른 고려시대 특유의 힘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다. 탐방에 참여한 유재숙(46)씨는 "교육을 통해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인(仁)을 베풀고 살아야 한다는 걸 몸소 실천한 율곡 선생의 가르침을 잘 따르면 좀 더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