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성악가의 음역 중 가장 낮은 음역인 베이스. 하지만 강병운·연광철과 사무엘 윤(윤태현)까지 한국서 베이스는 가장 멀리까지 비상하는 음역이기도 하다.
특히 연광철(46·서울대 음대 교수)씨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공고 출신으로 청주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뒤, 단돈 700달러를 들고 불가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1993년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에서 공동 우승을 거둔 후 세계무대를 누비고 있는 중.
작곡가 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 200주년인 내년 그는 다시 빈과 뮌헨, 런던의 오페라 무대에 서면서 나래를 편다. 오는 26일 독창회를 앞둔 연씨에게 '베이스의 모든 것'을 물었다.
―사실 베이스는 비인기 음역이 아닌가.
"클래식 애호가들도 베이스 가수를 꼽으라고 하면 20세기 초의 전설적 성악가 샬랴핀(1873~1938) 정도 외에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실은 그만큼 스타가 없다. 하지만 화려하게 피어났다가 일찍 지는 다른 성악가와 달리 베이스는 가늘고 길게 장수할 수 있는 음역이다. 체력과 목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70대 후반까지도 노래할 수 있다."
―주로 베이스가 오페라에서 맡는 역은.
"아버지나 군주 아니면 악당일 경우가 많다. 베이스가 주인공을 맡는 오페라는 베르디의 '아틸라',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등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다. 못해도 티가 안 나는 만큼, 잘해도 빛이 안 난다고 할까.(웃음)"
―한국의 베이스가 유럽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러시아나 동유럽의 베이스는 장신의 거구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성량으로 둔탁하고 거친 소리를 내뿜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동양인은 어두운 음색에 밝고 따뜻한 소리를 겸비해서 보다 인간적인 감동을 전할 수 있다."
―실례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데뷔 초기에 겪었던 망신을 공개하면.
"1994년 독일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바그너의 '발퀴레'를 연습하던 중이었다. 악역 훈딩 역할이었는데, 당시 보탄 역을 맡은 가수가 나를 향해 독일어로 '떠나가라!'고 노래했다. 이 말을 듣고 무대에서 쓰러지면서 죽어야 하는데, 대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당당하게 걸어 나오고 말았다. 연출가와 동료 가수 모두 웃느라 난리가 났다. 공연이 아니라 리허설이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2010년부터 서울대 강단에 서고 있다. 후배 성악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나는 내 음악에 대한 자부심으로 충만해서 살아온 경우가 아니다. 콩쿠르에서 스타로 떠올라서 세계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가 반짝하고 사라지는 경우와는 달리, 내게는 베를린의 극장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철저하게 '현장'이자 '학교'였다. 마찬가지로 후배들에게도 '진심으로 음악을 사랑하는가' '평생 음악을 하면서 살고 싶은가'라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다른 직업과는 달리 성악은 5~10년을 해도 성공이나 경력이 보장되지 않는다. 만약 음악이 명예를 위한 수단이라면, 정작 유학을 떠나서도 허송세월할 위험이 그만큼 크다."
―독창회에서 지휘자인 김덕기 교수(서울대)가 피아노 반주를 맡는 것도 이색적이다.
"청주대 4학년 때, 12세 연상의 김 교수가 오페라 '베르테르'(마스네)를 지휘하기 위해 청주에 왔다. 김 교수는 당시 오페라에 출연한 내 목소리를 듣고 '노래를 그만두지 말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내 삶의 전환점이 된 순간 가운데 하나였다. 그 인연으로 독창회마다 피아노 반주를 해주신다."
▷베이스 연광철 독창회, 10월 26일 고양아람누리, 1577-7766
입력 2012.10.0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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