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자녀에겐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다. 하지만 굳이 그 정도를 따지자면 부모의 도움이 가장 절실한 쪽은 단연 초등생 자녀일 것이다. 지난 18일 오전, 맛있는공부는 초등생 학부모 세 명과 마주했다. 아무래도 관심사가 입시 쪽에 치우친 고교생 학부모, '공부'보다 '인성' 걱정이 앞서는 중학생 학부모와 달리 이들의 대화 주제는 '성교육'부터 '가정학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고군분투 ‘아들 키우기’

이날 자리를 함께한 세 학부모는 "부모라면 배우는 자세로 아이를 키워야 한다"며 "태교처럼 자녀 연령대에 맞는 부모 교육 프로그램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지연(이하 '이'): 초등 2년생인 작은애는 남자여서 그런지 하루 종일 지적할 거리 투성이다. 여자아이인 큰애를 키울 때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김경숙(이하 '경'):
우리 아들도 초등 2학년인데 학교에서 마냥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있다. 초등생 자녀가 선생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하려면 가끔 엄마가 개입해야 한다.

이:
아들이 친구와 잘 지내지 못할 땐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진다. 괜히 엄마인 내가 끼어들었다가 자칫 아들을 '찌질이'로 만들 수도 있으니까. 사실 우리 아들은 축구를 잘 못한다. 아들이 친구들과 축구 시합 하는 걸 종종 구경하는데 그때마다 우리 아이를 가리키며 '○○한테 공 주지 말라'는 얘길 듣는다. 속상하지만 참아야지 어쩌겠나.

경: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들어가서 한글을 익혔다. 왼손잡이인 데다 운동할 때 반칙도 예사로 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규칙을 몸에 배게 하려고 매를 든 적도 있다. 효자손으로 손바닥이나 엉덩이를 몇 차례 때렸는데 나중엔 아이가 효자손만 보면 불안 증세를 보이더라. 전문가와의 상담 끝에 결국 아이가 보는 앞에서 효자손을 부러뜨리며 용서를 구했다.

김진희(이하 '진'):
초등생 아들과 엄마의 관계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애증(愛憎)'이다. 어젠 아들이 자신의 포켓몬 카드 뒤에 뭔가를 그려 보여주더라. 책을 던지고 있는 내 모습이라고 했다. "엄마는 화를 잘 내니까 '불'의 속성을 갖고 있으며 '소리 지르기' 공격을 할 수 있는 캐릭터"라나(웃음).

◇좌충우돌 '엄마표 교육'


경:
최근 '엄마표 교육'을 시작했다. 아이가 다니던 학원을 전부 끊고 하나만 남겼다. 주 1회는 아이와 함께 체험학습에 나선다.

이:
엄마표 교육은 처음부터 포기했다. 딸도 나와 공부하는 걸 싫어한다. '더 공부하고 싶다'며 과외 교사를 붙여 달라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두 아이가 기질도, 학습 성향도 너무 달라 다소 버겁다.

경:
가끔 엄마들 모임에 나가보면 혼란스럽다. 나도 나름대로 사교육에 대한 소신이 있는데 '아직도 아이를 영어 학원에 안 보내느냐'는 주변 엄마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접할 때마다 속상하다.

이:
아들에게 받아쓰기 공부를 시켜본 적이 있다. 싸울 일만 늘더라. 수시 시행 방식으로 바뀐 학교 단원 평가도 아들 둔 엄마 입장에선 골칫거리다. 시도 때도없이 시험을 치르니 덜렁대고 실수가 잦은 남자아이 입장에선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경:
아이가 하도 100점 한 번 못 받아 오기에 90점만 넘어도 100점 받았을 때처럼 상을 줬다. 그랬더니 어느 날 갑자기 100점짜리 시험지를 내밀더라.

이:
아이가 아직 어린데 너무 공부 타령 하는 것 아닌가 싶어 선배 엄마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초등생 때 성적이 상위 30%엔 들어야 중·고교 진학 후에도 잘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100점 받을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껴본 아이가 상급 학교 공부도 자신감 있게 잘해낼 수 있다는 얘기다.

◇설상가상 '고학년 지도'

진:
직장에 다니고 있다. 워킹맘은 대부분 '자녀에게 충분한 체험학습 기회를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심적 부담을 안고 살아간다.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국제중 진학 희망자가 많은 편이어서 경쟁이 치열하다. 다른 학교는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 부모의 학부모회 활동도 점차 뜸해진다던데 여긴 정반대다. 국제중 입시에서 고득점을 얻으려면 초등 5·6학년 성적은 물론, 다양한 대외활동 경력이 필수다. 그래서 자녀를 국제중에 보내려는 초등 고학년생 엄마들은 교사나 다른 학부모와의 정보 교류를 위해 정말 열심히 뛴다. 어떤 학교는 결속력이 남달리 강해 학교 측이 '자진 해체'를 권하는 모임까지 있다고 들었다. 국제중 입시에 별 관심 없는 나 같은 엄마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내년이면 초등 6학년이 되는 딸과 중학교 진학에 관한 얘길 종종 나눈다. 딸은 주변에 해외 유학이나 국제중 입시를 준비하는 또래가 벌써부터 꽤 있어 은근히 불안해하는 눈치다. 초등 5학년 교육 과정은 유난히 진로·인성교육 비중이 높다. 관련 프로그램이 한꺼번에 쏟아져 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온 가정통신문을 볼 때마다 멍해진다. 성교육도 걱정이다. 아이와 최근 일어난 성폭력 사건을 주제로 뭔가 얘기하려고 시도하는데 그때마다 아이는 '끔찍하다'며 줄행랑치기 바쁘다.

진:
성에 관한 지식은 동일 학년과 연령 간에도 편차가 상당하다. 관심 있는 아이들은 별별 희한한 용어까지 다 안다.

이:
딸 친구가 성폭행의 정의를 '이성의 폭력 행사'로 내리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진:
아이가 다니는 학교엔 이렇다 할 성교육 프로그램이 없는 것 같아 단기 성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나서기도 했다. 한번은 아들이 꽤 유명한 성교육 강연을 듣고 오더니 "내 몸은 소중한 것"이라며 "앞으로 라면을 안 먹겠다"고 선언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