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 한국 여인네들의 은근과 끈기를 상징하는 한산모시. 품격 있는 옷감으로 1500년간 사랑을 받아왔다. 한 필의 모시가 탄생하기까지는 기나긴 인고(忍苦)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인네들은 앞니로 모시를 쪼개고, 입술로 이어 붙이고 무릎으로 삼아가며 모시를 짰다. 젊은 패션 디자이너 이지승(29)씨가 충남 서천군 한산모시관을 찾았다. 그는 한국인의 '끈기'를 현대의 패션 아이콘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산모시짜기 보유자 방연옥(65)씨가 그를 반겼다.

쪼개고 이고 삼고… 모시 짜기는 인고의 상징

'밥그릇 하나에 모시 한 필이 다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공이 많이 들어간다는 말이다. 방씨는"모시풀 수확에서 표백까지 크게 잡아도 8단계, 꼬박 3~4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패션일을 하면서도 작업과정을 직접 본 건 처음"이라는 이씨는 작업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방연옥 모시풀을 잘라서 겉껍데기를 벗겨 낸 후 앞니로 쪼개서 가느다란 세모시를 만들어요. 이 사이에 넣고 태모시 섬유를 가늘게 쪼개고, 입술로 찢는 전통 방식으로 제조하기 때문에 한산모시는 모시 밭에 농약을 안 써요.

이지승 보통 일이 아니네요, 정말. 짜는 것도 힘들고 짜기 전 공정도 힘든 일이겠어요. 모시풀 심고 꺾는 것도 직접 다 하시나요?

방연옥 풀 꺾는 것부터 모시풀을 자르고 쪼개고 삼고 말려서 베틀에 짜는 것까지 혼자 다 하죠. 처음 모시째기 할 때는 입술이 다 터지고 피가 나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요. 앞니도 닳아서 조각이 떨어졌지. 지금은 이를 새로 넣었지만 웃다가 깜짝 놀라서 손으로 입을 가릴 때가 많아요. 무릎으로 삼으니까 무릎도 닳아서 피가 나고. 맨살에다 그 억신 식물 껍데기를 비비면 계속 피가 나고 닳고…. 아이고, 모시 일하면 온몸이 파스투성이야.

이지승 사실 저희도 옷 한 벌 만들 때 핏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몇 번씩 가봉을 해요. 몇 ㎜ 차이로 옷이 바뀌니까요. 정작 옷 만드는 시간은 짧은데 재단하고 밑작업하는 시간이 많이 걸려요. 무슨 일이든, 사람 손으로 하는 일이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말씀 들으니까 제가 작업하는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네요.

이지승씨가 한산모시를 활용해 만든 드레스.

방씨가 본격적으로 모시짜기를 시작한 지 30년. 한평생 모시를 째느라 이가 닳고, 삼느라 무릎도 다 닳았다. 모시의 고장에서 태어나 젖 뗄 무렵부터 모시 짜는 어머니의 모습을 봤고 코흘리개 시절부터 자연스레 모시를 접했다. 방씨는 "어머니가 '너는 이 고생 하지 말고 다른 거 하라'고 했는데 배운 게 이거뿐이니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실을 입술로 찢어 모시섬유를 만드는 '모시 째기'는 숙련도에 따라 품질이 좌우된다. 한산모시의 '숨은 비법'은 이 모시 째기에 있다. 모시풀 껍질을 벗겨서 말린 다음 그것을 앞니로 쪼개는 과정은 입술이 다 부르트고 피가 날 정도로 고단한 작업. 방씨는 "변덕스러운 사람보다 더 변덕스러운 게 모시"라며 "건조한 날에는 모시가 다 바스러져서 한여름에도 문을 다 닫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을 해야 된다"고 했다. "소금을 넣고 불판에다 말려요. 지금은 불판이지만 옛날에는 왕겻불을 마당에다 펴놓고 말렸죠. 연기가 나면 매워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한산모시, 한국의 오트쿠튀르

패션디자이너 이지승씨는 올해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에서 준우승을 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한복과 보자기를 응용한 작품으로 전통을 세련된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렸다는 평을 받았다.

이지승 보자기는 옷을 만들다가 남은 천들을 기워서 만든 건데도 지금 감각에도 전혀 손색없을 정도로 세련됐잖아요. 한국의 미가 전통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모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방연옥 이렇게 젊고 감각 있는 디자이너가 우리 한산모시로 편안하고 이쁜 옷 많이 만들어서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주셨으면 좋겠네요.

이지승 벨기에 패션스쿨로 유학 가보니 유럽에선 오트쿠튀르가 패션의 정점이에요. 맞춤복인 오트쿠튀르는 손으로 하는 작업이 많아요. 수를 놓고 비즈도 하나씩 달아야 되고 기성복으로 찍어낼 수 없는 것들이죠. 여기서 한산모시를 보니까 바로 이거다 싶어요. 기계로는 절대로 찍어낼 수 없는 섬유잖아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섬유를 갖고 잘 살릴 수 있는 디자인을 한다면 그게 바로 장인이 만든 오트쿠튀르가 아닐까요?

충남 서천 한산모시관에서 방연옥 보유자가 젊은 디자이너 이지승씨에게 한산모시 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젊은 감각으로 세계무대에

1960년대 서천에는 모시를 생업으로 하는 집들이 많았다. 여인네들은 밤새 짠 모시를 새벽시장에 내다 팔아 자녀 학비를 대고, 자식들 시집·장가를 보냈다. 하지만 1970년대 합성섬유의 등장 이후 위기를 맞았고, 이후엔 값싼 중국산 모시에 밀려 우리 전통 모시는 점차 자취를 감췄다.

방연옥 워낙 중노동이고 힘드니까 배우려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그래도 작년에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고 나서 관심이 많아졌어요. 저도 이제 눈이 어둡고 자꾸 힘이 달리는데 대가 끊어질까 봐 걱정이에요.

이지승 젊은 사람들이 입을 만한 모시옷이 없는데 오늘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새로운 세대에게 모시라는 멋을 소개하면서 유럽 무대에도 우리 명품을 알리는 옷을 만들고 싶어요.

이날 만남 후 이지승씨는 한산모시 옷감을 활용해 현대적 감각의 드레스 두 벌을 디자인했다. "20~30대가 편하고 멋스럽게 입을 수 있는 옷, 모시에 풀을 먹였을 때 뻣뻣이 살아있는 선의 느낌, 얇고 시스루적인 느낌을 표현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