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을 영화에 담는 감독은 아마 인물의 공적·사적 영역 모두를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두 가지를 한 번에 성취한다면 더 좋겠지만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담아낸다면 꽤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벨평화상 수상자 아웅산 수치를 다룬 뤽 베송 감독의 '더 레이디'는 둘 다 놓쳐서 안타까운 영화다.
어린 시절 미얀마 독립 영웅인 아버지 아웅산 장군을 잃은 수치(양자경)는 영국으로 건너가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들의 엄마로 평범하게 살아간다. 위독한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간 그는 군부 독재 아래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바람을 받아들여 민주화 운동에 나선다. 그는 곧 가택연금을 당하고 15년 동안 외로운 투쟁을 계속한다.
영화는 수치가 어떤 정치적인 활동을 펼쳤는지에 대해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그가 미얀마 민중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민주화 운동에서 어떤 존재인지 영화로는 알 수가 없다. 대신 그와 떨어져 살면서 그를 그리워하고 걱정해야 했던 가족의 모습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이것으로 그의 결정이 얼마나 힘든 것이고 숭고한지 보여주려 했다면, 그 의도 자체엔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걸 얄팍한 수준에서 담아냈다는 것이다.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기 전까지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보다 영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영화에선 오랜만에 고국에 들른 그가 민주화 운동에 나서달라는 부탁을 처음엔 거절했다가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자 바로 수락하고 운동가로서 비범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묘사된다. 가족들과 영국에서 안온한 삶을 살던 가정주부가 자신의 생명은 물론 가족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 일에 뛰어드는데 아무런 고민도 갈등도 하지 않았을까? 한 인간과 가족, 그리고 국가의 운명을 바꿀 만한 순간이 영화에선 통째로 증발했다. 게다가 모든 걸 뺏기고 15년간 가택연금 당하면서도 시종일관 내면의 변화가 없는 아웅산 수치는 평면적인 인물로 보인다. '더 레이디'는 결국 아웅산 수치의 정치적 성취도, 휴먼 스토리도 모두 놓치고 말았다. 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것이 포인트!
#대사 "언론이 당신에게 붙여준 별명 중 가장 마음에 든 게 있어. '철의 난초'."(오랜만에 만난 남편이 수치에게 하는 말.)
#장면 아웅산 수치가 발포 명령을 받고 자신에게 총을 겨눈 군인에게 당당히 걸어가는 장면. 그를 미얀마 국민이 왜 지지하는지 이해가 간다.
#이런 분 보세요 강한 여자 뒤에는 강한 가족이 있다는 걸 가족에게 깨닫게 해주고 싶은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