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하나. 한국인 유학생 넷 중 하나가 택하는 국가,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유학생이 살고 있는 국가는? 정답은 '중국'이다. 교육과학기술부(글로벌인재협력팀)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로 출국한 국내 유학생 26만2465명 중 6만2957명(약 24%)이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때마침 지난 24일은 한·중 국교 정상화 20주년 기념일이었다. '우리 아이도 중국에서 공부시켜볼까?' 엄청난 인구를 앞세워 지구촌에서 갈수록 세(勢)를 키워가는 중국을 보며 이런 생각 한두 번쯤 해본 학부모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미 수년 전 비슷한 고민 끝에 중국 유학을 결심, 현지 명문대 진학에 성공한 이들을 취재했다.
◇동기ㅣ주위 편견, '파죽의 성장세' 보며 견뎠다
"왜 굳이 후진국에 가려고 하니?" 오하영(20·푸단대 법학과 입학 예정)씨가 처음 주위 사람들에게 중국 유학 결심을 밝혔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오씨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직후 중국 대학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저만의 '평생 특기'를 찾으려면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중국은 미국과 함께 'G2(Group of 2)'로 불리며 급성장하고 있잖아요. 유학비 측면까지 고려하면 미국보다는 중국이 제게 더 맞을 것 같았죠."
지난 18일부터 닷새에 걸쳐 만난 유학생들은 대부분 오씨와 같은 이유로 중국행을 택했다. '취업의 유리함'도 이들이 손꼽은 중국 유학의 장점 중 하나였다. 정현우(베이징대 경제학원 금융학과 4년)씨는 "한국 대기업 인사 담당자가 유학생 채용을 목적으로 우리 대학 캠퍼스를 방문하는 광경을 종종 목격한다"고 말했다. 이관현(서우두스판대 대외산업과 4년)씨 역시 중국 체류 경험을 토대로 엔틱게임월드에 입사했다. 엔틱게임월드는 '쾌걸삼국지' 등의 중국 게임을 국내 정서에 맞게 변형, 보급하는 업체. 홍원준(26·베이징대 경제학원 금융학과 졸업)씨는 중국 공상은행 서울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세계 경제의 중심에 서 있는 국가입니다. 실제로 공상은행은 아프리카·남미 등 한국 은행이 없는 곳까지 진출해 있어요. 브라질에 발전소를 짓고 싶은 한국 기업도 공상은행을 통해 현지 업체와 거래를 트곤 하죠."
◇입시ㅣHSK·본고사 준비 위해 현지서 학원 수강
한국인이 중국 현지 대학에 입학하려면 중국 한어수평고시(HSK) 점수, 그리고 대학별로 치러지는 유학생 전용 본고사(이하 '본고사') 성적이 있어야 한다. 단, 본고사는 베이징대·칭화대·런민대 등 일부 명문대에서만 시행한다. 유학생은 대부분 본고사를 준비하기 위해 현지에 있는 한국 입시학원에 다닌다.
이주호(베이징대 경제학원 입학 예정)씨는 재수 기간을 포함, 북경고려학원(이하 '고려학원')에서 2년간 베이징대 입시를 준비했다. "고 2 때까진 상하이 깐취엔외국어고등학교에 다녔어요. 나머지 1년은 고려학원에서 공부했고요. 고려학원은 베이징 제14중학교(고등 과정)와 학력인증 관련 협약을 맺고 있어 고려학원생은 베이징 제14중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거든요. 본고사 시험 과목이나 난이도가 도시마다 조금씩 달라 상하이에서 베이징으로 입시 준비 장소를 옮겼어요. 아무래도 베이징 쪽 대학 문제가 어려운 편이죠."
한국인이 운영하는 현지 입시학원은 등록금 부담이 만만찮다. 이관현씨는 "중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인 운영 입시 전문 C학원의 연간 등록금은 1억원 선"이라고 말했다. 막대한 수강료에 비해 학원 측이 수강생에게 제공하는 숙소 수준은 기대에 못 미치는 편이다.
한국에서 중국 상위권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경우는 드물다. 문법·어순 등이 한국어와 전혀 다른 중국어의 특성상 얼마간의 현지 적응 기간이 불가피하기 때문. 오하영씨는 고교 졸업 후 약 1년 4개월간 이얼싼 중국문화원에 다니며 유학을 준비했다. 취재 중 만난 나머지 유학생은 전원 현지에서 3년 이상 체류하며 중국어를 익힌 경우였다. 오씨는 "중국어 공부에만 8개월, 중국어로 언어·수학·영어 등 주요 교과를 공부하는 데 다시 8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생활ㅣ일부 문화적 차이는 여전히 어려운 '숙제'
모든 중국 유학이 성공적인 건 아니다. 한득희(27·베이징대 법학원 졸업)씨는 "부모가 함께하지 않는 조기 유학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정현우씨는 "중국에선 미성년자도 술이나 담배를 쉽게 구매할 수 있어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경고했다. 생활비도 예상 외로 많이 든다. 정씨는 "도시마다 다르긴 하지만 베이징대·칭화대 등 명문대 밀집 지역을 기준으로 했을 때 지낼 만한 원룸 월세는 60만 원 선"이라고 귀띔했다.
한국인에겐 다소 낯선 현지 문화를 수용하는 일도 쉽지 않다. 중국 심양에서 중·고교를 졸업한 이정훈(20·칭화대 전자공학과 입학 예정)씨는 "체벌이 당연시되는 분위기, 문 없는 화장실 같은 문화에 익숙해지는 데 2년쯤 걸렸다"고 말했다. 이관현씨는 한국과 중국의 판이한 역사관을 실감한 후 한동안 충격에 시달렸다. "중국 역사서엔 6·25 전쟁(1950~1953)이 한국 역사서와 전혀 다르게 기술돼 있어요. 철저하게 북한 쪽 입장에서 남한을 공격한 중공군이 한반도에서 미군을 몰아낸 것처럼 미화돼 있더라고요." 이주호씨 역시 "'고구려와 고려는 중국의 속국' '이어도는 중국 땅' 같은 현지 역사 교과서 내용 때문에 교사와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中유학생이 말하는 중국 유학 '100배' 즐기기
―"중국인과 친해지는 게 중국 유학 성공의 지름길이에요. 팔씨름·농구 등 몸으로 부딪치는 운동을 함께 해 보세요."(이정훈·이관현)
―"중국에 있는 외국인과 친해지면 중국어뿐 아니라 영어도 함께 익힐 수 있어 일석이조죠. 제 경우 '아시아법학생연합회(ALSA)' 사무총장으로 활동했어요."(한득희)
―"중국인은 은유적 사자성어를 즐겨 쓰므로 대표적 표현 몇 가지 정도는 익혀두면 좋아요."(홍원준)
―"중국 대학은 한국 대학과 달리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이 없어요. 학점을 잘 받으려면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해요."(정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