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되면 관둔다더니…
18대 국회의원 중 59명이 변호사 겸직… "검찰 감독·견제할 의원이 피고인 변론 말이 되나"
수임료 명목 정치자금 우려도
"발언권 더 세지 않을까" 의뢰인들, 기대감에 찾지만 다른사람 시켜 대리변론, 재판 잊어 불출석 하기도
"국회의원이 되면 변호사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변호사 출신 후보들도 동참해 주세요."
4·11 총선을 앞두고 변호사 자격을 가진 후보들의 '당선시 변호사 겸직을 하지 않겠다'는 기득권 포기 공약이 눈에 띈다.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하면서 변호사 업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의혹을 받은 박희태 전 의장이 국회의원 신분으로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라미드그룹으로부터 2억원을 받은 것이 논란이 되자 일부 변호사 출신 후보들이 변호사 겸직을 하지 않겠다고 나선 것. 비단 변호사 후보들뿐 아니다. 지난 5일, 대한변호사협회는 상임이사회의를 열어 국회의원이 영리 목적으로 변호사 업무를 수행하는 것에 대한 제재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현행 국회법은 '상임위원은 소관 상임위원회의 직무와 관련한 영리행위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변호사 업무와 관련이 있는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이 아니고 변호사 자격을 가진 국회의원이라면 자유롭게 변호사 활동을 할 수 있는 셈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국회로부터 제출받은 '18대 국회의원 겸직현황'에 따르면 18대 국회의원 중 59명이 변호사를 겸직하고 있다. 이 중 40여명은 변호사 업무와 관련해 보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국회의원 변호사'들이 사건 수임료 명목으로 정치자금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불공정한 재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합동법률사무소에 근무하는 C 변호사는 "국회의원이면 검찰을 견제·감독해야 하는데, 검찰이 기소한 피고인의 소송대리를 맡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정활동을 하며 소송대리를 맡다 보면 불성실 변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문제다. 변협의 한 관계자는 "의정활동으로 바쁘다 보니 정작 자신이 수임한 사건을 대충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자신이 수임한 사건에 경험이 부족한 젊은 변호사를 내보내거나, 심지어 재판 기일을 잊고 있다 불출석해 의뢰인을 당혹스럽게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그는 "사건을 의뢰한 당사자에겐 소송이 일생일대의 문제인데, 불성실 변론을 하는 것은 일종의 배임행위"라고 했다.
국회의원 변호사들의 불성실 변론이 지속적으로 문제되고 있지만 의뢰인들은 국회의원 변호사들을 선호한다. 한 로펌에 근무하는 A변호사는 "현직 국회의원이 자신의 재판에 이름만 걸쳐도 검찰과 법원에 강력한 발언력을 가질 것이라 기대하고 '무조건 국회의원 변호사로 해달라'고 요구하는 의뢰인들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검찰이나 법원에 (국회의원의 압력행사가) 먹히지는 않는다"고 했다.
미국의 경우 의원 연봉의 15%가 넘는 외부수입은 벌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대한변협의 엄상익 공보이사는 "변호사가 공익적인 목적으로 변론을 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고, 의사·약사·변리사 등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도 고려해 겸직금지 문제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공익적인 목적이 아닌 영리목적으로 사건을 수임하고 불성실하게 변론을 한다면 변호사의 품위를 손상시킬 수 있어 제재를 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