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인구 중 40%는 의료보험이 없다."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논객으로 꼽히는 에드가 독토로의 이 같은 발언은 조지 부시 대통령을 곤경에 빠트렸다. 독토로는 부시의 기업친화적인 경제정책이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다며 이처럼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이른바 '온정적인 자본주의' 논리로 표밭갈이를 하던 부시에게 '무보험 인구 40%'는 표심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다행히 재선에 성공은 했지만 부시는 정치적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었다.
대체 40%는 어디서 나온 숫자일까. 부시 재임시절 무보험자는 '40 밀리언' 곧 4천만명이었다. 독토로는 '밀리언'을 의도적으로 '%'로 바꿔치기했다. 불법체류자를 포함한 4천만명은 전체인구의 15%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독토로는 부시를 떨어트리기 위해 숫자를 조작했다.
처음엔 그의 '네거티브' 전법이 통하는 듯 했으나 얼마안가 들통이 났다. "왜 4천만명을 40%라고 왜곡했느냐"는 비난에도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까지도 해명을 내놓거나 사과 한 번 한 적이 없다.
지난 2008년 부시와 공화당 후보 존 매케인을 한 방에 날려버린 신조어가 '맥세임(McSame)'이다. '매케인'과 '세임'의 합성어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 진영에선 매케인과 부시는 한통속(세임)이어서 그를 지지하면 부시를 또 뽑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네거티브 캠페인을 펼쳤다.
실제로 중도보수인 매케인은 부시와는 차별화된 정책을 내놨다. 그러나 진보진영으로부터 테러와의 전쟁에서도 '맥세임', 경제정책에서도 '맥세임'으로 조롱을 당해 대권 문턱에서 좌절을 맛봐야 했다.
하기야 힐러리 클린턴도 네거티브에 빠져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경선에서 대역전을 노린 그의 '새벽 3시 전화벨'은 고전에 속한다. 미국이 곤히 잠들고 있는 그 시각, 백악관에서 전화벨이 울린다면 힐러리와 오바마 둘 중 누가 받는 것이 안심이 되겠느냐는 광고다. 오바마를 철저히 경량급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선거철만 되면 인신공격 등 네거티브가 판을 치지만 유권자들은 이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그런데도 네거티브는 갈수록 기승을 부린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먹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분석이다.
의식의 세계에서 네거티브는 해서는 안 될 비도덕적인 짓거리다. 하지만 무의식의 세계에선 전혀 다르게 반응한다. 인간의 뇌는 위협에 극히 민감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맥세임'이 네거티브인줄 알면서도 잠재의식 속에 '전쟁을 더 확산시키면 어찌될까' 불안한 나머지 유권자들은 매케인 대신 오바마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한국의 정치판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양국 의회가 비준한 한미 FTA협정을 집권하면 무효화하겠다느니,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서로 막말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급기야 '고대녀'라 불리는 정치 신인이 해군을 '해적'이라고 지칭해 파문이 일어났다.
폐족이 됐다던 진보가 부활의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모양새다. 저마다 노무현과 나는 한몸 곧 '노세임(RohSame)'을 내세우며 벌써 당선이나 된 듯 들떠있는 분위기다. 이러다가 보수건 진보건 더 심한 말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마치 정치판이 해적판이 돼가고 있는 듯 싶어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