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임영진] 아이돌그룹의 팀이름이 신, 구세대를 가르는 기준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십대들의 우상 H.O.T를 핫이라고 읽으면 구세대, 에이치오티라고 읽으면 신세대였다. 이마저도 오래 전 에피소드가 돼 버렸지만 말이다. 2012년 봄을 앞둔 겨울, tvN ‘코미디 빅리그2’에 출연 중인 팀 라이또(박규선, 양세형, 이용진)가 또 다른 기준을 제시했다. “싫다”가 아닌 “시르다”, “좋다” 대신에 “조으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신세대, “세요나프레”를 외치며 두 팔을 번쩍 드는 누군가가 “더럽게 재미없으면” 구세대다.
‘게임 폐인’을 무대에 올리는 라이또는 예삐공주 이용진, 전직 요정인 찐찌버거 박규선, 버린 자식 양세형으로 구성됐다. 턱수염을 기른 예삐공주는 자신의 외모를 조롱하는 버린 자식의 비난에도 개의치 않는 긍정적인 여성이다. 떨어져 나갈 듯 팔을 휘두르며 무대를 휘젓는 버린 자식은 양세형만이 소화할 수 있는 밉지 않은 무개념 캐릭터고 안면근육을 마비시킨 채 은근슬쩍 나타나 바비인형을 여자친구라고 소개하는 소박함은 박규선의 비주얼일 때 빛을 발한다. 실제 라이또는 초긍정주의 이용진부터 초현실주의 박규선, 초귀염주의 양세형까지 극중 캐릭터만큼이나 다른 성격을 가졌다.
“초반 1, 2라운드 때, 순위 발표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있잖아요. 몇 등할 것 같다고 예상을 했는데 (이)용진이는 항상 1, 2등을, 제가 3등. (박)규선이만 5등 안이라고 얘기했거든요. 용진이하고 제가 뭐라고 했어요. 긍정의 힘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러지 말라고.(웃음) 용진이는 분위기가 진짜 안 좋아도 혼자 1등할 것 같다고 해서 좀 그런데 규선이는 뭘해도 5등, 6등 이러니까요.(웃음)”(양세형)
이렇게나 다른 세 사람이 모여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고 있다. ‘코빅’ 정규리그 우승을 일찌감치 결정짓고 3일부터 진행되는 챔피언스리그 몸풀기를 마친 라이또는 개인 차를 극복하고 한 배에 올랐다.
“저희가 성격은 많이 안 맞는데 개그스타일은 잘 맞아요. 스타일을 떠나서 제가 갖지 않은 걸 이용진, 박규선이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제가 아이디어 회의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가정했을 때 잘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박규선이었어요. 그리고 이용진이 있어서 캐릭터가 잘 살았고요. 저는 그림을 많이 따졌어요. 객관적으로 제가 귀여운 캐릭터라면 용진은 잘 생기고, 규선은 못 생긴 캐릭터로 생각했죠.(웃음)”(양세형)
“세형, 용진이 형은 즉석에서 이것저것 애드리브로 꺼내놓는 스타일이고 저는 여러 방면으로 먼저 시도 해보고 공부하는 스타일이에요. 재미있든 없든 혼자 코너를 쭉 짜 놓고 회의할 때 가지고 나와서 반응을 봐요. 안타깝게도 건질 건 몇 개 없지만(웃음) 제가 해온 아이디어를 토대로 같이 얘기하고 살을 붙여요.”(박규선)
“조으다, 시르다”, “사주세효우”, “자리주삼, 저리가삼”, “세요나프레” 등 다양한 유행어를 낳은 라이또의 중심에는 자타공인 최고의 아이디어 뱅크 박규선이 있다. 그는 “개그 프로그램을 하면서 사람들이 어떤 느낌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며 ‘게임 폐인’의 성공 비결을 전했다.
“조카가 ‘이모, 나 이거 안 사주면 시르다, 사주면? 사주면 조으다’라고 하는데 바로 느낌이 왔어요. 유행어가 될 거 같았죠. 그래서 아이디어 창고에 넣어두었는데 ‘코빅’을 위해 특별히 꺼냈습니다. 용진이 형 덕분에 소화가 잘된 것도 있고요.”(박규선)
“진짜 아이디어 창고가 있어요. 규선이가 아이디어 창고의 문을 열 때 얼마나 비장한 모습이던지….(웃음) 참고로 아이디어 창고는 규선이 침대 매트리스를 들면 나옵니다. 그런 장소에다가 규선이가 유행어가 될 만한 것들을 잔뜩 적어서 넣어 놓았더라고요. 거기서 꺼내 준 게 ‘조으다, 시르다’ 였어요. 제가 하던 개그스타일과 달라 처음에는 시큰둥했죠.(웃음)”(이용진)
‘게임 폐인’은 게임 마니아, 오타쿠적 수집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해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점을 콕 집어 표현한다는 데에 묘미가 있다. 게임 폐인들의 모습을 희화화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일반화해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을 역설적으로 꼬집고 있기도 하다.
“게임폐인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런 의도도 분명히 있죠. 그런데요, 솔직히 저희가 아이디어를 짤 때 의미가 부여된 부분은 10중에 1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9는 재미있으려고 선택한 거에요. 게임을 하면서 채팅을 해보면 어디 미인 대회도 나갔었다, 예쁘다, 돈 많다 등등의 허세를 부리는데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양세형)
‘코빅’ 정규리그를 확정한 후 이용진은 “제대를 하고 다른 일을 하려고 했었다. 그 때 박규선과 양세형이 붙잡아 줬다”고 우승 소감을 전한 바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 이용진은 여행 가이드를 제2의 직업으로 마음에 품었었다.
“제가 여행을 좋아해요. 프랑스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지인 소개로 현지에서 가이드 일을 하는 분 집에 묵었어요. 가이드 일이라는 게 하나부터 열까지 공부를 한 다음에 설명을 해야 하는, 말을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저와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개그맨이 아니라면 가이드라는 직업이 괜찮을 것 같았어요. 또 군대에 있으면서 개그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다른 일을 선망하게 됐었죠.”(이용진)
여행 가이드와 개그맨, 두 갈래의 길을 놓고 고민하던 이용진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양세형과 박규선은 이용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식사 대접, 숙소 제공 등의 물량 공세에서 달콤한 냄새가 났다”는 이용진은 극적으로 라이또에 합류했다.
“다들 좋아해주는데 저희 아버지는 탐탁지 않게 여기세요. 올해 환갑이신데 아들이 여장하고 나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좀 있으신 것 같아요. 지난 명절에 친척들이 모였는데 아버지가 ‘게임 폐인’ 드럽게 재미없다고 한 50번 쯤 말씀하신 것 같아요. 욱해서 다음에 장군하면 되겠느냐고 되려 큰소리를 쳤죠.(웃음) ‘웃찾사’에서 ‘웅이 아버지’ 할 때는 좋아해주셨는데 아쉬워요.”(이용진)
다시 한 번 개그의 꿈을 펼친 라이또, 그리고 라이또의 자리를 마련해 준 ‘코빅’.라이또에게 ‘코빅’은 영어의 현재 진행형(~ING)과 같다.
“챔피언스 리그를 앞두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입니다. 정규리그보다 개그맨들이 더 치열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모든 일이 마무리가 중요하잖아요. 아껴두었던 것들을 많이 꺼내놓고 ‘코빅’을 사랑해주는 분들과 즐기겠습니다. 정규리그, 챔피언스 리그가 끝났다고 ‘코빅’이 끝나는 게 아닌 것처럼 라이또에게 ‘코빅’은 항상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입니다. 더 많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힘을 주세요.(웃음)”(양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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