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림 여론조사팀장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유능한 보수 대(對) 무능한 진보'란 구도를 부각시키며 압승했다. 2008년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은 "지난 집권세력이 무능했다"는 일관된 메시지가 호응을 얻으면서 153석이란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이런 분위기가 반영되어 당시 갤럽조사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5년간 직무를 잘했다"는 평가가 21%에 그쳤고, 정당 지지율은 한나라당(53%)이 과거 여당이던 민주당(15%)보다 3배 이상이나 높았다.

현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2010년 지방선거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포함한 8차례의 재·보선마다 '집권세력 무능론'이 야당의 단골 메뉴였고 대부분 효과를 거뒀다. 기세가 오른 민주통합당은 최근에도 한명숙 대표가 여권을 향해 '무능의 극치'라고 공세를 펼치며 총선 전략으로 또다시 '심판론'을 꺼내 들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폐족(廢族)을 자처하던 분들이 모여 지난 정권에서 추진했던 정책에 대해 말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심판의 대상"이라고 맞대응했지만, 요즘 여론은 여당이 불리하다.

지난 2월 16일 아산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일자리 창출을 잘할 정당'을 묻는 질문에 민주당(32%)이 새누리당(28%)을 앞섰다. 1년 전인 지난해 2월 동일한 조사에서 당시 한나라당(42%)이 민주당(18%)을 월등히 앞섰던 것과 비교하면 극적인 변화다. '교육문제를 잘 다룰 수 있는 정당'도 여당은 민주당에게 1년 전엔 35% 대(對) 24%로 우세했지만, 지금은 27% 대 35%로 역전됐다. '남북문제와 안보를 잘 다룰 수 있는 정당'도 작년엔 여당이 39% 대 31%로 앞섰지만, 지금은 27% 대 42%로 열세다. 여당이 원래 취약한 이미지가 있던 '소득 재분배를 잘할 정당'은 1년 전엔 여당이 24% 대 27%로 약간 밀렸지만, 지금은 20% 대 39%란 더블 스코어로 뒤져있다.

새누리당은 중요한 정책 분야에서 야당에 비해 어느 하나도 나은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눈여겨봐야 한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무능한 정당'이란 낙인(烙印)은 선관위 디도스 공격이나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보다 더 큰 악재(惡材)일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야당의 '심판론'에 부딪혀 고전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것은 이런 민심 때문이다.

하지만 '심판론'이 또다시 순조롭게 먹힐 것으로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정권 및 국회 주도세력 교체를 이미 몇 차례 경험한 국민들 사이에서 "집권세력을 심판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란 기대가 약해지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모든 선거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심판론'에 피로감이 생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달 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선 '총선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유권자의 56%가 '경제 살리기'라고 답했고, '이명박 정부 평가'는 15%에 그쳤다. 야당이 '무능한 정부'라고 욕만 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골문 앞 노마크 찬스에서 헛발질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