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륜형 한국고용정보원 직업연구센터 연구원

기업은 물론,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활동 범위가 넓어질 것으로 기대되는 직업이 있다. 펀드레이저(fundraiser·모금 전문가)도 그 중 하나다. 펀드레이저란 기금(fund)을 모으고 집행하는 사람이다. 특정 목적에 필요한 자금 규모를 분석, 개인과 단체의 기부 활동을 독려하고 실제 기부가 성사되도록 기획하는 게 주요 업무. 쉽게 말해 기부하기 원하는 사람과 기부받기 원하는 단체를 연결하는 일종의 '다리' 역할이다. '기부의 아이콘' 워렌 버핏이 빌게이츠 재단에 자기 재산의 85%를 기부하게 된 배경에도 펀드레이저의 공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펀드레이저는 주로 비영리기관(NPO)나 병원, 대학, 문화·예술단체 등에서 일한다. 국내에선 대부분의 펀드레이저가 아름다운재단·사회복지공동모금회·월드비전·유니세프·굿네이버스 등의 단체에 소속돼 활동 중이다. 이들은 좀 더 많은 사람의 기부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마케팅 활동을 펼친다. 발로 뛰어야 할 때도 많다. 고액 기부자를 발굴하기 위해 기업 CEO나 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과 접촉하기도 하고, 수혜자의 상황이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현장을 직접 둘러보며 꼼꼼히 살피기도 한다.

기부금을 건넨 후 보고서를 작성해 후원자에게 전달하는 일, 후원자와 함께 수혜자를 방문하는 일도 펀드레이저의 주요 업무다. 이 같은 활동은 후원자가 자신의 기부금 사용 내역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기금을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 필요하다. 후원자가 수혜자의 처지에 공감, 기부 행위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도 가치를 지닌다.

펀드레이저가 되기 위한 별도 학위나 전공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복지·의료·문화 관련 전공은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비영리 복지단체 등에 입사해 모금 담당 부서에서 일하며 관련 업무를 익히는 것이다. 특히 자원봉사나 거리 모금 활동 경험은 펀드레이저의 자질을 보여주는 척도이므로 관련 경력을 많이 쌓아두면 도움이 된다.

펀드레이저가 갖춰야 할 자질은 여러 가지다. 마케팅 능력과 기획력은 기본으로 갖춰야 하고, 기부가 성사될 수 있도록 후원자를 잘 설득하려면 원활한 대인관계기술도 필수다. 무엇보다 적절한 이해력과 공감 능력, 경청 기술을 발휘해 후원자의 신뢰를 얻어내는 게 중요하다. 또한 금전과 관련된 일인 만큼 윤리적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외국에선 펀드레이저의 방문 빈도가 곧 성공의 척도로 여겨질 만큼 기부 문화가 발달돼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펀드레이저란 직업을 아는 사람조차 많지 않을 정도로 이 분야의 인식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하지만 최근 기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기부시장 규모는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성장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특히 대학이나 병원 쪽 펀드레이저의 수요는 급증하는 반면, 전문가급 인력은 턱없이 부족해 헤드헌터가 업무에 어려움을 느낄 정도라고 한다.

기부문화가 활성화되고 기부금을 필요로 하는 기관이 늘어나면 펀드레이저 시장은 더 커질 것이다. 더욱이 펀드레이저는 경험과 연륜이 쌓일수록 빛을 발하는 일인 만큼 나이 들어서도 활동할 수 있는 대표적 공익적 직업으로 주목받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