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베일로 얼굴을 칭칭 가린 흑인 여성이 호텔 방에 들어오자마자 무릎을 꿇고 펑펑 울었다. 콩고민주공화국 수도 킨샤사의 호텔 바닥은 시멘트였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그녀가 내게 자신의 아픔을 전달할 언어는 없었다. 하지만 눈물로 뒤범벅인 얼굴은 지난 4년여 그녀가 겪은 고통과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2002년 콩고민주공화국의 정보기관에 고위직으로 근무하고 있던 그녀의 남편 욤비는 대통령이 집권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 사실을 정리한 보고서를 냈다가 감옥에 갔다. 목숨도 건사하지 못할 판이었던 그는 고심 끝에 탈옥했다. 위조 여권을 갖고 고국을 떠난 욤비는 우여곡절 끝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국가로 한국을 택했다. 정권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남편이 탈옥해 외국으로 가자 그의 가족은 사람의 눈을 피해 다녀야 했다. 욤비의 부인과 세 명의 아이는 예전 서울의 난지도처럼 쓰레기로 뒤덮인 곳에서 움막을 치고 살았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수도 없었고 끼니를 거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욤비는 한국으로 피신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곳에서 그는 '불법체류자' 신세였다. 콩고에서 수배자처럼 불안에 떠는 가족을 한국에 데려올 수도 없었다. 난민지원단체를 운영하던 중 욤비를 알게 된 나는 그의 가족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욤비가 난민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욤비와 나는 우리 정부에 정치적 박해를 받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욤비를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우리 정부는 그가 핍박받았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번번이 기각했다. 생명의 위협에 급작스레 고국을 등지는 난민이 충분한 서류를 구비할 수 없는 법이지만, 우리 정부는 이런 예외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 욤비의 구금 사실이 실린 현지 신문을 제출해도 우리 정부는 "아프리카 신문은 돈만 주면 조작할 수 있다"며 욤비의 난민 신청을 불허했다.
결국 나는 콩고민주공화국에 가서 추가 자료를 직접 수집하기로 했다. 추가 증빙 서류를 확보하러 9000㎞를 날아간다는 발상이 터무니없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방법만이 욤비가 난민으로 인정받는 유일한 길이었다. 2006년 후원자의 도움으로 콩고민주공화국을 방문한 내 앞에서 무릎 꿇고 한없이 우는 욤비의 부인을 보면서 내 결정이 옳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이날 욤비의 아내는 남편을 도우러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나를 보면서 다시 남편과 같이 살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과 지난 세월 남편 없이 아이들을 지키고자 어머니로 감당했던 서러움과 두려움이 한 번에 눈물로 터지는 듯했다.
나는 욤비의 부인이 흘린 눈물을 뒤로 하고 욤비가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확실한' 자료와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킨샤사에서 만난 욤비의 동료가 욤비를 심문한 정부 조서를 몰래 복사해 내게 넘겨줬다. 현지 신문사에 들러 욤비가 자신이 핍박받고 있다는 증거로 제출했던 신문 전체를 구입했다. 내가 제출한 추가 자료에 드디어 우리 정부는 2008년 욤비를 난민으로 인정했다. 욤비 부인과 세 자녀도 2009년 한국에 들어왔다. 욤비가 다니고 있던 인천의 교회와 자동차기업 GM에서 집을 마련해줬다.
욤비는 자신의 고국이 한국처럼 민주화되길 원한다. 지난달 30일 욤비는 30여명의 동료들과 함께 서울 종로에 있는 콩고민주공화국 대사관과 이태원의 벨기에 대사관을 찾아가 시위를 벌였다. 작년 11월 28일 시행된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고 여겨졌던 에티엔 치세케디 야당 후보 대신 조셉 카빌라 현 대통령이 더 많은 표를 얻어 재선(再選)되었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가 조작됐으며, 그 과정에 과거 콩고민주공화국을 식민지로 삼았던 벨기에의 압력이 있었다고 본 것이다.
나는 이날 욤비와 같이 시위에 동참하면서 100여년 전 일제(日帝)의 폭정에 신음하던 우리 민족을 도와달라며 수 십년을 이역만리 타국에서 정처 없이 떠돈 이승만·김구 선생이 떠올랐다. 욤비는 언젠가 콩고민주공화국에 돌아가 지도자로 국민을 섬길 것이다. 그러면 콩고민주공화국 국민은 한국을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생각할 것이다. 2011년 6월말 현재 파키스탄·미얀마·중국·나이지리아·우간다·방글라데시 등 분쟁 지역이나 독재국가에서 온 3301명이 한국에 난민 신청을 했고, 그중 250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작년 12월 29일 국회에서 황우여 의원의 발의로 '난민법'이 통과되면서 우리에게 찾아온 난민에게 조속히 난민 지위를 부여하고, 난민 심사기간 중 취업·주거·의료지원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새로 제정된 난민법으로 대한민국이 독재와 가난에 시달리는 개발도상국을 돕는 희망의 땅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