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코리아에 외국인들이 몰려오고 있다. 외국인들이 우선적으로 찾아가는 곳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알려주는 유적지들이다. 외국인들은 유적, 문화재를 통해서 우리나라를 보고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유적지의 입구에 붙어있는 문화재 관련 영어설명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콩글리시 등으로 도배된 문장들이 수두룩하다. 문화재 관련이어서 한글로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은 마당에 복잡하게 꼬아놓은 한글문장, 이를 더 복잡하게 번역해놓은 영어문장, 말도 안 되는 콩글리시에 오자까지…. 글로벌 코리아의 모습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영어 전문가 오석태씨가 경기북부의 유적지를 중심으로 어떤 점이 잘못되고 아쉬운지 하나하나 짚어본다. /편집자
고양시 행주산성①
고양시 덕양산에 가면 행주산성이 있다. 행주산성은 임진왜란때 권율 장군이 소수의 군사를 이끌고 대첩을 이끌어낸 곳이다. 입구에 있는 게시판 내용은 이렇게 시작한다.
"행주산성은 덕양산(해발 124.9m)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전체 둘레는 약 1㎞이다."
첫 문장의 호흡이 길어서 약간 산만한 감이 있지만 '토성으로'를 '토성이며'로 바꾸면 이해가 쉬워진다. 이 문장이 영어로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는데 어색한 부분을 확인해본다.
Haengjusanseong(Fortress) is an earthen castle built at the top and along the ridge of Deogyangsan(Mt.) (124.9 meters above the see level). It is approximately 1 kilometer in girth.
1. 행주산성을 Haengjusan- seong(Fortress)으로 표기하는 것이 현재는 '공식화'되어 있지만 이건 사실 대단히 어색한 표기이다. 이 영문을 보고 외국인 누구도 '행주산성'이라고 발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와 [아]는 a로 표기한다. 우리 유치원 아이들이 배우는 영어 phonics에서도 그렇게 가르친다. 하지만 어른들은 [애]를 ae라 우기며 그걸 법이라 한다. 눈물겨운 한국식 영어의 탄생이다. [우]는 u가 아니라 oo로 표기한다. u는 [어]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어]를 eo로 쓰는 것도 잘못된 표기에 해당된다. 결국 '행주산성'으로 가장 근접하게 발음되게 하려면 Hangjoosansung으로 표기해야 한다. 그리고 괄호 안에 (Fortress)라고 적어 놓았는데 이것은 마치 Fortress를 한글로는 '행주산성'이라고 한다는 것처럼 보여서 옳지 않다. 차라리 Hangjoo Mountain Fortress라고 하는 것이 좋다.
2. '토성'을 an earthen castle로 옮겨 놓았다. 물론 earthen이 '흙으로 된'의 뜻이지만 그 활용빈도가 낮아서 영 난해한 느낌이다. 이것을 '흙으로 만들어진 성' 즉 a castle made from earth로 바꾸는 것이 좋다.
3. 게시판의 영어문장은 "행주산성은 토성이다"로 시작한다. 영어상에서는 행주산성이 토성이라는 사실을 가장 중요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글에서는 "행주산성은 덕양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쌓은 성이다"가 더 중요한 부분이다. 한글을 영어로 바꿀 때 강조하는 바가 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작문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일관된 강조를 위해서 본문에서는 '토성이다'를 서술어가 아닌 수식어로 바꾸어주는 것이 옳다). 이 부분을 영어에서는 built at the top and along the ridge of Deogyansan(Mt.)이라고 했다. built는 '과거에 이미 지어진 상태'를 뜻한다.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는 at the top and along the ridge로 표현했다.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잘된 번역인데 단, at the top은 on the top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at은 단순히 '어디에'를 말하며 on은 '어디 위에'를 뜻해서 '정상'을 뜻하는 top과 아주 잘 어울린다. 그래서 보통 '정상에'는 on the top를 쓴다. 덕양산은 Mt. Dugyang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게시판에서처럼 Deogyangsan(Mt.)에 이어서 또 하나의 괄호가 나오는 것은 좋지 않은 모습이다.
4. 해발 124.9m를 게시판에서는 (124.9 meters above the see level)이라고 적고 있다. '해발'을 말할 때는 above sea level, 또는 altitude라는 일반적인 명사가 있다. 게시판에 쓰인 see level은 엄연한 오기(誤記)이며 정관사 the도 없애야 한다. 아니면 an altitude of 124.9 meters라고 해도 좋다.
5. '전체 둘레가 약 1㎞이다'를 게시판에서는 It is approximately 1 kilometer in girth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문장에서는 girth의 사용에 문제가 있다. 생소하기 짝이 없는 이 어휘는 보통 '나무의 둘레'나 '사람, 동물 등의 몸통둘레'를 말할 때 사용한다. 본문에서처럼 산성의 둘레를 말할 때 사용하는 것은 대단히 어색하다. 물론 자유로운 표현방식의 글에서는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이 환영 받을 수 있지만 공식문서나 게시판에서는 객관적인 표현과 어휘선택이 절대적이다. 그럴 때 가장 보편적인 어휘는 around이다. The fortress is about 1㎞ around 정도가 적절한 문장이다.
설명을 종합하여 적절하게 완성된 문장은 다음과 같다.
Hangjoo Mountain Fortress made from earth was built on the top and along the ridge of Mt. Dugyang (an altitude of 124.9 meters). The fortress is about 1㎞ around.
☞ 오석태는…
오석태씨는 84년 한국 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를 나온 토종 영어전문가이다. 미국유학을 다녀오지도 않고서도 최고의 영어전문가로 SBS, KBS, MBC TV, CBS라디오에서 영어회화를 강의해왔다. 저서로는 스마트시대에 영어로 리더되기, 영어회화 무작정 따라하기, 영어회화 끝장 레슨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