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통일연구원장

'평화통일'은 남북 대화에서 양측 대표가 함께 외칠 수 있는 구호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긴 하지만, 일단 그렇다. 한국 사회에서도 통일의 방법과 내용에 대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용어는 '평화통일'뿐이며, 그 이상의 논의는 거의 금기시돼 있다. 한 발 더 들어가 어떻게 하는 것이 평화통일인가를 논하기 시작하면 "용공이다" "북한을 자극한다" 등 말싸움과 함께 보혁(保革) 논쟁이 일어난다.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통일 방법을 작명(作名)해 내는 것은 통일 연구자들에게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더욱 답답한 것은 "어떤 경로든 평화통일 기회가 온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적지 않은 사람이 "돈이 많이 드는 통일이라면 굳이 원할 필요가 없다"고 답한다는 점이다. 2010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세(稅)의 필요성을 언급했을 때, 반대론이 제기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하지만 비용을 이유로 통일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통일 비용을 과장하지 말라는 것이다. 통일 비용은 "북한 주민의 생활수준이 남한과 같아지기까지 들어가는 돈"일 수도 있고, "북한 주민이 심리적 안정을 느끼게 하는 데 필요한 돈"일 수도 있다. 그래서 3000조원이 되기도 하고, 1000조원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남녀가 아파트를 살 돈이 부족해도 전세방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할 수 있듯, 강한 통일 열정만 있다면 통일 비용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둘째, 통일 비용은 일정 기간 투입되지만 통일이 가져다주는 편익은 후손 만대로 계승된다는 것이다. 국토가 넓어지고 시장 규모가 커지며, 남한의 자본력과 기술력이 북한의 자원·노동력과 결합하여 더 높은 경쟁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산가족이 형제를 만나고, 실향민이 망향(望鄕)의 한(恨)을 달래며, 남한 학생들이 금강산과 묘향산에 수학여행을 갈 수 있게 되는 것은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편익들이다.

셋째, 통일의 가치를 비용과 편익이라는 셈법을 통해 평가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한국이 통일을 통해 세계사 속에서 더욱 의미 있는 존재로 발돋움할 수 있다면 이는 분명 비용 차원을 넘는 문제다. 북한에 수령(首領)독재 체제가 등장하여 70년 동안 분단을 강요하고 있지만, 1000년에 걸친 통일 한반도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현재의 분단은 부자연스러운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이 부자연스러움을 벗고 원래 상태를 회복하는 데 금전적 잣대는 필요하지 않다.

통일은 국내외 모든 여건이 성숙해야 가능하다. 그런 여건이 충족됐음에도 통일 비용을 이유로 기회를 흘려보낸다면, 다음 기회는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500년 후에야 올 수도 있고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독일은 다가온 통일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오늘날 통일을 후회하는 독일 국민은 거의 없다.

통일의 세계사·민족사적 의미를 폄하하고 돈 계산을 앞세우는 젊은이들에 대해 기성세대는 무한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우리 자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며 살아왔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왜 내가 후세를 위해 통일세금을 내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는 젊은이들에게 "그것은 너희를 위해 희생한 부모 세대를 욕보이는 말"이라는 점을 일러주어야 한다. "우리 국민이 통일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어떤 주변국이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겠느냐"라고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