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한 평생을 소외받으며 숨죽인 채 살았죠"
한센병(나병, 문둥병)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경기도 남양주시 성생마을 회장 박정수(56.남)씨의 말이다.
박씨가 9살이 되던 해. 농사일을 하던 박씨는 오른 손에 마비가 왔다. 처음엔 동네 친구들과 장난치며 다친 줄 알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오른 팔은 점점 구부러졌다. 한센병이었다.
병에 걸린 박씨의 모습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서서히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친구의 부모님들이 몰려와 같이 놀던 친구들을 데려갔다. 그는 어린 나이에 견디기 힘든 외로움을 겪어야 했다.
그는 "어릴 적 어머님이 '가난 때문에 병원에 한번 데려가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며 우셨어요. '자신을 너무 원망하지 말아 달라'고 하셨는데…, 난 한 번도 부모님을 원망해본 적이 없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결국 박씨는 주위의 차가운 시선과 압박에 혼자서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당시 그의 나이 12살이었다.
가족의 품을 떠난 그가 찾아간 곳은 소록도(小鹿島). 당시 소록도의 주민은 한센병 환자와 병원에 근무하는 직원 및 그 가족이 전부였으며, 약 4,000여명의 한센인들이 모여 살았다.
박씨는 그곳에 마치지 못한 학업을 이어가며, 꿈을 키워갔다. 하지만 가난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박씨는 "혼자 살다보니까 돈이 없어 끼니를 걱정해야했죠. 결국 중학교에서 공부를 포기했어요"라고 말했다.
마지못해 섬을 나온 그는 일거리를 찾아 전국을 전전긍긍했다. 그러던 중 경기도 남양주 성생마을에서 양돈장 일을 도우며 마을에 정착하게 됐다.
그러나 이곳의 생활도 처음에는 그리 평탄치는 못했다. 하루 종일 박씨가 양돈장에서 일하며 받는 월급은 1만원이었다. 1980년도는 현재 1그릇에 5,000원 하는 자장면을 350원에 팔던 시절이다. 또한 인근 동네 주민들은 박씨를 비롯한 한센인들을 보면 농기구를 휘두르며 그들의 목숨을 위협하기까지 했다.
그는 "처음 한센인 마을을 세울 때 이웃마을 사람들이 '당장 마을을 떠나라'며 휘두른 농기구에 맞아 얼굴과 몸에 상처 입은 분들이 정말 많았어요. 저희가 피해를 준 것도 없는데 말이죠"라고 말했다.
이어 "다들 자식들만은 많이 배워서 무시 받지 않도록 하고 싶었죠"라며 "정작 본인들은 글도 못 읽고 쓰지도 못하는 분들이거든요. 생각해보면 정말 가슴 아픈 일이죠"라고 말했다.
이런 그들에게 과거의 아픔을 잊고 자유롭게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지난 12일 ‘경기도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포천시 한센촌인 장자마을과 연천군 다온마을, 파주시 우정마을 행복학습관에 이어 4번째로 ‘성생마을 행복학습관’이 개관한 것이다.
기존 마석가구단지 관리사무소 2층 마을회의실을(165㎡) 리모델링한 시설인 이곳은 강의와 마을회의가 가능한 멀티공간, 컴퓨터실, 독서 등이 가능한 다용도 공간인 학습준비실 등 학습공간을 갖추었다. 이곳에서는 한글교실, 웃음치료 등 마을주민을 위한 다양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날 개관행사에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이석우 남양주 시장, 주민 300여 명이 참석해 ‘행복학습관’ 개관을 축하했다. 행사 중 김 지사는 한글교실을 수료한 19명의 수료생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수료증을 수여했다.
이날 직접 글을 써서 소감문을 발표한 곽정자(80.여) 할머니는 “이렇게 한글을 배워서 글을 쓸 수 있게 돼 너무 감사하다. 이제 혼자 숙제도 하고 딸들 전화번호도 알 수 있다. 은행에서 내 이름 석 자 적는 것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성생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이곳 마석가구단지에 행복학습관이 들어섰다”며 “주민들의 꿈과 행복을 담을 행복학습관을 통해 많은 학습기회를 접하고 배우고 익히는 더 큰 행복을 계속해서 누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은 사회·교육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평생교육을 접목시킨 것으로 교육을 통해 주민들 삶의 가치를 높이고 마을을 발전시키기 위함이다.
도는 올해 양주 천성마을, 양평 상록촌 등 한센인 정착촌 2곳을 비롯해 안산 고향마을, 동두천걸산마을 등 4곳에 행복학습관을 조성할 계획이다.
한센병이란 나균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만성 전염병이다. 나균은 항산성이며, 작은 막대모양의 세균이다. 주로 피부와 말초신경, 상기도 점막과 눈, 손, 발 등에 변화가 나타난다.
이는 선사시대 부터 발생하였으며, 인류 역사와 기억 속에 무서운 이미지로 남아있는 병으로 과거 사회로 부터 격리시켜서 인권 침해가 심각하였던 대표적 질환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1만 4천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모두 음성환자로서 전염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