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보단 3D

'옥보단 3D'(감독 손립기)는 제목 자체가 상징적이다. 영화의 초점을 간결하게 말해준다. '옥보단'은 중국의 17세기 에로소설이다. 금서에 속할 만큼 성적 표현 수위가 높다. 3D는 최첨단 영상 기술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옥보단 3D'는 400년 전 관능소설이 21세기 최첨단 영상 기술이 만난 영화임을 강조한다.

제목에 굳이 3D를 붙인 의도는 불을 보듯 뻔하다.수위 높은 성애 장면을 3D 입체 영상으로 생생하게,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초 3D 에로영화'라는 카피는 이런 특징을 그대로 전해준다.(국내에서 지난해 10월 3D 에로영화를 표방한 '나탈리'가 이미 개봉한 적이 있다).

이런 마케팅 전략은 홍콩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개봉 첫날에만 278만 홍콩달러(3억867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이는 '색, 계'의 120만 홍콩달러, '아바타'가 거둔 262만 홍콩달러를 뛰어넘는다. 홍콩 박스오피스 역대 최고 기록이다. '옥보단'은 1991년에도 홍콩에서 개봉됐으며,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속편도 극장용, 비디오용으로 국내외에서 여러 편 제작됐다.

영화의 표면적인 메시지는 권선징악, 인과응보다. 부부의 진정한 사랑은 섹스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플롯 역시 이런 주제를 표현하도록 짜여졌다. 늙은 부부와 신혼 부부의 대화 시퀀스가 앞뒤에서 대구를 이룬다. 미양생과 옥황이 결혼식장에서 노부부의 충고를 흘려듣고, 온갖 풍파를 겪은 후에 다른 신혼부부에게 똑같은 말을 들려준다.

그러나 이런 '착한' 주제는 노골적이고 기기묘묘한 섹스신, 단조롭고 맥락없는 스토리에 묻혀 흔적만 겨우 찾을 수 있다. 영화의 정서는 뱀이 벗어놓은 허물처럼 메마르고, 메시지는 뜬구름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주인공은 잘 생기고 그림에도 재능이 있는 미양생. 그는 친구의 짝인 옥황에게 반해 그녀를 가로채 결혼한다. 하지만 미양생에게는 타고난 신체적 약점이 있다. 옥향을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한다. 어느 날 미앙생은 술과 여자로 가득 찬 낙원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의 성기가 턱없이 작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하다가 비책을 마련한다. 섹스 고수들을 찾아가 온갖 비법을 전수받고, 성기 크기를 업그레이드하고, 마침내 섹스의 화신이 되어 성적 황홀경에 빠져든다.

영화는 미양생이 겪는 성적 모험이 중심이다. 여배우들의 벗은 육체를 클로즈업으로 보여주고, 곡예를 하는 듯한 성애 묘사도 줄기차게 등장한다. 풍차 돌리기, 그네 타기 같은 상상 속의 섹스신으로 채워진다. 관객의 관음증을 자극하는 수준이 아니다. 대놓고 육체를 전시한다.

그러나 이런 3D 에로 영상의 유혹은 매력적이지 않다. 그 이유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노출과 섹스신만 비슷한 톤으로, 나열식으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또 3D 테크놀로지를 자랑한다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영화의 한계로 작용한다. '옥보단 3D'만한 섹스신 영상은 이제 인터넷에 흔하다. 전혀 새로울 게 없다.

이는 1980년대 한국영화의 토속 에로물 붐과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시 토속 에로물의 노출 강도는 파격적이었다. 정치적 의도와는 별개로 사회적 화제가 됐다. 그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강도높은 노출과 섹스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들의 노출 수위는 지금 보면 촌스러운 수준이다. 그만큼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에로티시즘과 3D 테크놀로지의 결합만으로는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함들다. 그런 점에서 '옥보단 3D'는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장르마저 혼란스럽다. 후반으로 갈수록 웃음을 자아내는 코미디는 줄고, 가학적인 장면이 화면을 채운다. 무협물의 고수처럼 칼을 날리며 싸우는 액션의 비중도 높아진다.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유쾌한 섹스 코미디를 벗어난다. 미양생과 옥향의 순애보와 개연성 없는 설교로 마무리되는 결말도 느닷없다. 결국 '옥보단 3D'는 스토리나 인물의 내면에 대한 고민이 없는, 시각적 즐거움에만 치중한 영화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