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전·현직 직원들이 금품 수수 혐의로 줄줄이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고, 저축은행의 불법 예금 인출 사태를 막지 못한 데 따른 비난 여론이 고조되면서 금감원 내부는 뒤숭숭한 상태다. 특히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직후 계열사인 부산2저축은행에서 5700만원의 예금을 인출한 금감원 직원이 자살하는 사건이 3일 터지면서 금감원의 충격은 극도에 달하고 있다.
경찰과 금감원에 따르면 김씨의 부인은 2월 17일 정상 영업 중인 부산2저축은행에서 예금보호 한도(5000만원)를 초과하는 5700만원의 예금을 찾았다. 부산2저축은행은 2월 19일 영업정지됐다.
김씨의 부인은 김씨가 숨진 이후 경찰 조사에서 "부산저축은행의 영업정지 소식을 언론을 통해 알고 번호표를 뽑아 나와 아이들 명의로 된 10개 계좌에 있던 예금 5700만원을 정상적으로 모두 찾았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부산저축은행에도 김씨 부인과 자녀 명의로 3700만원의 예금이 있었으나 김씨의 부인은 이를 인출하지 못하고 가지급금 2000만원만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지난달 28일 금감원에서 '영업정지 직전 저축은행에서 돈을 인출한 직원이 있으면 신고하라'는 지침에 따라 부인이 정상적으로 예금을 인출했다고 자진 신고했고 저축은행 사태가 확대되자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며 고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명문대 출신의 공인회계사인 김씨는 2007년 부산지원으로 발령이 났으며 부산 모 언론사에서 근무하는 부인과 자녀 두 명을 두고 있다.
경찰은 "유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김씨가 부산저축은행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금감원 부산지원은 "김씨는 기획업무를 맡았으며 저축은행과는 업무 연관성이 없었다"고 밝혔다.
김씨의 자살 외에도 각종 악재가 쌓이면서 금감원은 극도로 위축되는 분위기다. 금감원의 한 팀장은 "요즘은 시선이 하도 따가워서 밖에 나가 명함을 못 내밀겠다"고 했다. 입사 4년차 직원은 "자부심을 갖고 일했는데 요즘은 금감원 다닌다고 하기가 민망할 지경"이라고 했다. 내부에서는 "1999년 출범 이후 최대 위기" "국민들의 신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권혁세 원장도 지난달 27일 직원들을 모아 특별 윤리교육 시간을 갖고 "현 상황은 설립 이후 최대의 위기이며 비상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며 쇄신을 촉구했다. 권 원장은 지난 3월 28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을 당시 "금감원을 똑바로 개혁하라"는 주문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취임 한 달 만에 5명의 전·현직 직원이 구속되자 권 원장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사석에서 "금감원 쇄신안을 마련해두었지만 누가 언제 또 비리에 연루될까 싶어 발표를 못 하고 있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감독원과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 4개 조직이 통합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매년 인사철마다 출신별로 뭉쳐 요직(要職)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등 조직 이기주의가 근절되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