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드래곤(본명 권지용·23)은 아이돌이다. 그룹 '빅뱅'의 리더로서 2006년 데뷔한 뒤 '거짓말' '하루하루' '투나잇' 등 발표하는 노래마다 온·오프라인 가요차트를 휩쓰는 한국의 대표적 아이돌이다.

지 드래곤은 아이돌이 아니다. 그는 빅뱅 히트곡 대부분을 작사·작곡·프로듀싱했다. 패션계가 공인(公認)하는 패셔니스타이자 트렌드세터이기도 하다. 그래서 춤과 외모를 재료 삼아 기획사들이 대량복제해내는 여느 아이돌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을 듣는다. 22일 이 '청년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만났다. 종합일간지와는 첫 인터뷰라고 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빅뱅이 다음 달 10일부터 1주일여 예정으로 일본 순회공연에 나서는 것이었다.

지 드래곤은 인터뷰 때“몸이 안 좋아 병원에 다녀오느라 메이크업도 못했다. 사진은 나중에 좋은 모습으로 따로 찍어 제공하겠다”고 하더니 이 사진을 보내왔다. 이처럼 철저한 자기 관리가 그에게 최고의 패셔니스타·스타일리스트라는 타이틀을 안겨줬는지도 모르겠다. 그는“음악은 곧 나”라며“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꿈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일본지진 후유증이 여전한데 겁 안 나나.

"솔직히 겁이 많이 난다. 하지만 일본 팬들이 다른 나라 가수인데도 좋아해 줬는데 큰일이 생겼다고 약속을 저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한 인터뷰에서 "정말 아티스트 대우를 받기 때문에 일본에 진출한다"고 했다.

"일본은 신인이라도 색깔을 인정해주고 높게 평가해준다. 그러나 한국에선 예전부터 가수들이 '아티스트'라기보다는 '딴따라'의 이미지가 강했다. 아이돌도 마찬가지다. 앨범을 띄우기 위해 예능프로에도 많이 나가야 되고 비즈니스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배운 것은 음악밖에 없는데 막상 가수가 되고 보니 음악만 잘해서는 안 되는 게임이었다."

―당신을 '청년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라고들 한다.

"무한한 영광이다. 그런 이미지는 내가 만든 것일 수도, 사람들이 정해준 것일 수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가수가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게 당연한 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굉장히 크게 포장돼 약간 민망하다."

―가수·작곡가·작사가·프로듀서 중 어느 일을 가장 사랑하나.

"가수다. 평가가 좋든 안 좋든 (노래하는 게) 가장 스릴있다."

―왜 대중이 당신에게 열광할까.

"이미지나 이슈를 만드는 것에서 내가 '흐름'을 읽는 법을 좀 알아서가 아닐까. 다른 음악이 유행할 때 하우스 같은 것을 먼저 하고, 하우스가 유행할 때는 조금 더 나가서 일렉트로닉을 하는 식이다. 물론 약간 계산적이었을 수도 있다."

3·11 대지진 이후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5월에 일본에서 대규모 콘서트를 여는 아이돌 그룹‘빅뱅’. 왼쪽부터 승리, 지 드래곤, 태양, 대성, 탑.

―10대 초반부터 연예계 생활을 했다. 뭔가 잃어버린 듯한, 허전한 느낌이 들 때는 없나.

"예전엔 친구들과 놀지 못하고 여자친구도 못 만나는 게 속상했었다. 데뷔 기약도 없이 연습생 생활을 할 때는 '나중에 혹시 원하던 꿈에 도달하지 못하면 부모님을 어떻게 보고 내 인생은 어찌 될까'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 시기를 지나 앨범을 내고 정식 데뷔한 뒤엔 생각할 시간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그렇게 10년이 지나니 해탈(解脫)이 오는 것 같다. '이게 운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돼 지금은 마음이 편하다."

―한국의 아이돌 기획 양성 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23살인데 인생의 반을 (연습만) 한 것 같다. 10년 쌓은 탑은 무너지는 데 10년이 걸리고 5년 동안 쌓으면 무너지는 데도 5년이 걸린다고 생각한다. 나는 10년을 쌓았으니 10년은 갈 거라는 생각으로 한다. 가수는 어디 가서 누가 툭 치면 (음악이)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4~5년은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해야 한다."

―공부는 싫었나.

"학교 공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믿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공부를 못하진 않았다. 회사에서 학교 중간·기말고사가 있으면 공부 결과를 테스트해 일정 점수를 넘지 못할 경우 다음 주 연습에 못 나오게 했다. 나는 한 번도 그 기준을 넘기지 못한 적이 없다."

―지 드래곤에게 음악이란.

"음악은 '나'다. 따로 설명할 길이 없다."

―좋은 음악, 훌륭한 음악을 정의한다면.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이다. 노래를 못해도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면 훌륭한 음악이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사람이 포장마차에서 소주 먹고 막 부르는 노래를 지나가는 사람이 듣고 슬펐다면 그것도 훌륭한 음악이다."

―힙합, 알앤비, 일렉트로닉 같은 여러 장르 중 가장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직까지는 힙합이다. 건방진 얘기일 수도 있지만 힙합했던 사람들은 클래식이든 록이든 모던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힙합에는 정해진 룰이나 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여러 가지가 많이 나올지도 모른다."

―작곡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나.

"새로운 느낌이다. 가사나 주제 같은 것을 생각하기보다 오랜만에 빅뱅을 보는 팬의 입장에서 빅뱅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뭘까를 염두에 두고 작업한다."

―빅뱅 곡을 거의 혼자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그 노래가 그 노래 같다는 느낌도 든다. '자기 복제'가 걱정되진 않나.

"솔직히 (걱정이) 많다. 작곡가들에겐 꼭 풀어야 하는 숙제 중 하나이다. 나는 필(feel)을 받으면 곡을 빨리 쓰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못 한다. 아니 안 그러려고 한다. 요즘은 빨리 한 곡을 썼어도 계속 수정한다. 예전엔 나 혼자 듣고 평가했지만 이제는 다른 작곡가, 사장님, 친구, 매니저에게 들려주고 검증받는다."

―2009년 솔로 곡 가사에 비속어와 여성 납치를 연상시키는 내용이 들어 있어 청소년 유해판정을 받았다.

"청소년들은 내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고, 그들이 꿈꾸는 곳에 내가 먼저 도착했기 때문에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그 또래의 생각을 노래에 그대로 전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서너살 먹은 아이들에게도 아무렇지 않은 말인데 한국 정서에선 좀 일렀던 듯싶다. 이제는 (비속어 등은) 빼려고 한다. 절충점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이전 인터뷰에서 "대중이 지 드래곤 하면 색안경 끼는 게 있다"고 했다.

"요즘은 (대중이 색안경을) 반쯤 접은 듯하다. 이전에는 옷도 야하고 선정적 문구가 적힌 것을 입고 나오 고, 사회적으로 '어?' 하고 느끼도록 하는 말도 많이 하고 다녀서 그랬을 것이다."

―최고의 패셔니스타라는 평이 많다.

"기분이 너무 좋다. 그러나 그 이상의 큰 의미는 없다. 꿈은 있다. 사업은 아니지만 옷으로 뭔가 해보고 싶긴 하다."

―지금 연애 중인가.

"항상 (연애)한다는 마음이다. 근데 할 사람이 없다, 만날 수가 없으니까. 그래도 몰래몰래 하지 않겠나, 여러분들이 모르는 것뿐이지."(웃음)

―돈 문제로 헤어지는 아이돌 그룹이 많았는데 빅뱅은 최근 소속사와 5년 재계약을 했다.

"회사가 불안정하거나 우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면 가수를 포기하거나 다른 회사로 옮길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문제가 없다."

―누구는 "빅뱅이 너무 몸집이 커져 다른 데로 가고 싶어도 가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하던데.

"그 말도 맞다. 다른 기획사에서 이적 제의를 해 온 적이 아예 없다. 겁이 나는 모양이다."(웃음)

―후배 아이돌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는.

"(잠시 생각한 뒤) 나는 많은 사람들의 꿈이 되고 싶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저 사람 같은 가수가 돼야지'하고 꿈꾸도록 만들고 싶다. 지금 신인들은 '나는 가수다'의 절창(絶唱) 선배 가수들을 보면 부끄러울 것이다. 그런 부끄러움을 느껴야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되고 더 단단한 사람이 될 것이다."

['청년 권지용'의 솔직 고백]
"정상에서 천천히 떨어지고 싶어… 유명세는 아직도 버겁다"

'23살 청년 권지용'의 인간적인 고민은 뭘까.

우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의 유명세. "사람들은 빅뱅이 스타니까 호의호식하며 여자친구도 많이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유명한 사람일수록 갈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다. 식사 한 번 하러 가도 주변에 사람들이 있으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른다. 옷을 사러 가도 '사람들 보기에 너무 싼 걸 사나' 등등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스타를 보는) 생각을 바꿔주면 좋겠다. 연예인을 '동물원의 원숭이' 같은 느낌으로 대하면 우리도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지 드래곤은 "지금 가장 큰 고민이 뭐냐"고 묻자 처음에는 "고민없이 살려고 한다"고 했다. "앞으로 5년은 고민이 없다, 회사와 계약을 했고 할 일이 있으니까"라며 웃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었다. "5년 후에는 뭘 할까, 그게 고민이라면 고민이다. 계약이 끝나도 작곡가로 YG에 계속 있겠지만 나이가 서른을 넘으면 가수로서는 (인기 유지에 대한) 자신감이 적어질 것 같다." 그는 "30살이 넘어서까지 (인기를) 이어가야 하는 게 우리 몫이겠지만 5년, 10년 계속 가다보면 아무래도 우리도 (정상에서) 내려갈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준비를 많이 해놓아야 할 듯싶다. 최대한 느린 속도로 떨어지고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얘기가 나온 김에 직설적으로 찔러봤다. "인기를 잃을까 두렵지는 않은가." 그의 답. "선배들이 말하듯 인기는 물거품이다. 좋고 필요하지만 한순간 날아가는 것이 인기다. 거기에 치중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계속 다른 음악으로, 좋은 음악으로 인정받으면 인기는 따라오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