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앉은 채 다리를 꼬고 상체를 숙였다가 올리는 동작. 스트레칭을 가르치던 서울발레시어터 안무가 제임스 전(52)이 목소리를 높였다. "무릎 펴세요. 등도 쫙!" 무용수들 틈에 낀 사내들은 굼뜨고 어색했다. 오랫동안 웅크렸던 몸은 정직했다. "허리 아파요" "쥐나요 쥐…".
10일 과천시민회관 발레연습실. '홈리스(노숙인) 발레교육' 프로그램의 첫 시간이다. 지난해 한 사회적기업이 창간한 잡지 '빅이슈'를 판매하면서 자활 중인 노숙인 7명이 몸부터 푼 뒤 발레 기초동작과 리듬을 익혔다. 연말까지 일요일마다 3시간씩 발레를 배우게 된다.
스트레칭을 한 지 30분, 굳었던 몸이 풀리며 '학생들' 얼굴에 땀이 솟았다. 제임스 전은 "아프죠? 몸이 왜 재미있냐면 우리가 몰랐던 것을 알게 해줍니다. 그러니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라며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가장 나이 많은 김영철(56)씨가 "상쾌하네요"라고 했다.
노숙인은 대부분 어깨 근육이 뭉쳐 있었다. 구부러진 자세 때문이다. 제임스 전은 "미국 유학 때 식당 웨이터를 하루 8시간 했는데, 중요한 건 바른 자세와 자신감"이라며 "당당하게 상대와 눈을 맞춰야 잡지도 더 팔릴 것"이라고 했다.
로시니의 발레 음악이 흘러나왔고 '걷기 연습'이 시작됐다. 흰 선을 따라 박자에 맞춰 걷는 것인데, 누군가 "음악 좀 천천히 하면 안 돼요?"라고 했다. 짧으면 2년, 길면 10년 넘게 노숙생활을 했다는 그들은 세상보다 속도가 느렸다.
점심 시간은 화기애애했다. 지난해에도 발레교육에 참여했던 '고참' 김수원(51)씨는 "망가졌던 몸이 좋아졌고 자신감도 붙었다"고 했다.
잡지를 팔며 수입이 생긴 이들은 고시원에서 지내며 주 6일 일한다. '홈리스 발레교육'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문화재단 등이 후원하는 사업이다. 이들은 올 연말 서울발레시어터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에 출연한다. 우아한 의상을 입고 춤추는 파티 장면에서다. 김영철씨는 "무대 데뷔가 욕심 난다"면서 "그렇게만 되면 따봉(최고)!"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