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봉의 영화&다이어트] 다음에 열거하는 영화들은 제작 시기도, 감독도, 장르도 서로 다릅니다. 국내 영화도 섞여 있습니다. 같이 언급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이는 영화들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1. 킹스 스피치 (The King's Speech, 톰 후퍼, 2010)
2. 노다메 칸타빌레 (Nodame Kantabire, 카와무라 야스히로 등, 2010)
3. 노잉 (Knowing, 알렉스 프로야스, 2009)
4. 밤과 낮 (Night and Day, 홍상수, 2007)
5.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The Fall, 타셈 싱, 2006)
6. 돌이킬 수 없는 (Irreversible; 가스파 노에, 2002)
유일한 공통점은, 베토벤 교향곡 7번의 2악장 알레그레토가 영화 속에서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베토벤의 9개 교향곡 중 3번 영웅, 5번 운명, 6번 전원, 9번 합창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멜로디를 흥얼거릴 정도로 귀에 익고 제목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교향곡 7번? 글쎄요….
이렇게 많은 영화에서 OST로 사용하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겁니다. '딴 딴딴 따~따~'로 조용하고 차분하게 시작되지만 그 비장감과 장엄함은 점점 증폭되어 갑니다. 그 박자와 음률이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서 심리학적 연구 대상이 되곤 했으니까요.
'노다메 칸타빌레'는 클래식 음악영화였기에 클래식이 삽입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인트로에 삽입되었다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장 이상으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노잉'에서도 폐허가 된 지구와 그 위를 넋 잃고 헤매는 인간들 위로 베토벤 7번이 흐릅니다. '더 폴'은 하반신이 마비된 스턴트맨이 병원에서 만난 꼬마에게 들려주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압도적인 비주얼로 표현한 영화입니다. 웅장하고 스펙터클한 환상 속의 장면을 표현하는데 음악이 한몫 거들었죠. 2002년 칸영화제에서 충격을 던져주었던 '돌이킬 수 없는'은 모니카 벨루치를 주연으로 성폭행당한 여성의 몇 시간을 시간의 흐름과 역순으로 보여주는데 영화의 마지막, 즉 여인이 성폭행당하기 전 평화롭던 장면에 이 음악이 흐르면서 끝맺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에서는 일상과 상상 속의 공간에 이 음악을 던져 놓습니다. 개똥을 치우는 장면까지 삽입이 되어 있으니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킹스 스피치'에서는 말더듬이 국왕이 라디오 연설을 통해 독일에 전쟁 선포 연설을 하는 장면에서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엄청난 감동'이라는 것은 압도적인 스케일이나 화려한 그래픽, 잘 생긴 남녀 배우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끝까지 잘 짜여진 이야기와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 수 있는 배우, 그리고 그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음악만으로 충분합니다. 베토벤 7번 2악장 알레그레토는 '비극이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이겨내야 한다'는 비장감을 표현하는 가장 완벽한 멜로디일 겁니다. 이 음악보다 더 나은 배경 음악을 고를 수 없겠지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한번 그 장면을 떠 올려보십시오. 잔뜩 긴장한 왕실 가족들과 수상, 방송국 직원들 사이를 딱딱하게 얼굴이 굳은 말더듬이 국왕이 언어치료사와 함께 걸어갑니다. 그리고는 조용한 작은 방, 마이크 앞에 서지요. 그의 친구는 그의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커다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조용히 손으로 그의 연설을 인도합니다. 가끔 더듬기도 하고 몇 번의 위기도 있었지만 베토벤 7번의 음악을 타고, 1940년대의 곰삭은 스피커 목소리로 그의 연설이 국민들에게 퍼져갑니다. 글로 읽으면 별 것 아닌 장면 같지만, 막상 영화로 보면 왜 그렇게 멋있어 보이는지 아실 겁니다.
톰 후퍼 감독은 뭔가 결점이 있는 리더와 그 리더를 보좌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대단한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크게 성공하지 못한 영화지만 '댐드 유나이티드'에서 영국 프로 축구팀에 새로 영입된 다혈질의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과 그를 차분히 보좌한 테일러 코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던 그의 재능이 '킹스 스피치'에서 활짝 꽃을 피웠습니다.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제가 본 톰 후퍼 감독은 일관적으로 '신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 특히 결함이 있는 리더에게는 참 힘든 일입니다. 리더로서는 부족한 자질이라는 자존심의 상처, 남들에게 뒷말을 듣고 있다는 끝없는 편집증은 마음의 여유를 갉아 먹고, 타인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재벌가들을 봐도 형제의 난이라든가 심지어는 부모 자식 간에도 싸움과 반목이 횡행하고 있으니까요.
'킹스 스피치'도 말더듬증과 자신감 부족, 그리고 형으로부터 떠 넘겨진 국왕이라는 자리를 부담스러워 하는 조지 6세와 먼 호주에서 영국으로 온 무자격 언어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 자존심, 실망을 통해 쌓여진 '신뢰'를 그려갑니다.
'의사-환자 간의 관계 (Doctor-Patient relationship)'를 흔히 '라뽀 (Rapport)'라고 많이 표현합니다. 라뽀는 단순한 신뢰 (trust)와는 좀 다르죠. '신뢰'는 그 사람 속이야 어떨지 몰라도 약속만큼은 정확하게 지킨다는 이성적 느낌이 강합니다. '라뽀'는 이성적인 것은 물론 감성적인 것까지 포함된 것입니다. '내 편'이라는 느낌이 좀 강하죠. 항상 나를 맞춰 준다는 간신의 의미가 아니라 내가 잘못된 일을 한다면 목숨을 걸고 막고, 내가 해낸 성공은 나보다 더 기뻐해주고, 내가 하는 일이 더 잘 되도록 도와준다는 '충신'의 개념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의사를 만난다는 것은 '내 목숨'을 맡기는 일인데 자격증 때문에 맡기는 것은 아니겠죠? 그 사람 손기술이 뛰어나서 0.1mm의 혈관도 이을 줄 알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뢰를 넘어선 라뽀 때문일 겁니다. 저처럼 지방흡입이나 비만을 치료하는 의사들에게도 라뽀는 중요합니다. 비만이나 다이어트가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은 아니지요. 최소 한두 달이고 길면 몇 년간 환자를 보아야 되는데 이런 관계가 유지되려면 단순한 신뢰의 차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간 이 세계에서 조금 이름을 얻고, 의사 선생님들께 강의도 하고,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그만 조금 우쭐해져서 '제일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환자분들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옳아!'라는 강요를 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반성하게 됩니다. 저는 그래서 이 영화가 좋습니다.
그러고 보니, '킹스 스피치'에서 조지 6세와 라이오넬 로그 사이의 관계는 'Trust'라기 보다는 'Rapport'라고 해야겠습니다.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과의 관계를 되짚어 보고 싶을 때 보아야 될 영화입니다.
영화 중간에 조지 6세가 히틀러의 연설이 담긴 동영상을 보고는 '뭐라고 하는지 몰라도 참 말은 잘하는군' 하고 이야기합니다. 최근 'Hitler; The Rise of Evil' 이라는 2부작 미니시리즈를 보게 되었는데 히틀러의 광기어린 연설 장면 재현이 대단하더군요. 조지 6세의 어눌하지만 감동적인 연설과 비교해서 보시지요. '광기'와 '감동'은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