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은동의 작업실에 세 명의 미술가가 카메라 앞에 섰다. 81세 서양화가 오승우 화백, 조각가인 오상욱(52) 홍익대 겸임교수, 그리고 오제성(25·국민대 입체미술 4학년)씨다. 3대에 걸쳐 한 길을 걷고 있다. 우리나라 서양화의 개척자이자 2002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고(故) 오지호(1905~1982) 화백까지 더하면 4대다. 국내 미술계에서는 거의 유일하다.
"이렇게 할아버지·아버지와 셋이 사진을 찍는 건 처음"이라며 손자가 쑥스럽게 웃자, 오승우 화백이 "우리 집 금기가 서로의 작품에 대해 얘기하지 않기, 가르치려 들지 않기"라고 했다.
"서로 작품세계가 다르기 때문이죠. 내가 아버지(고 오지호 화백)로부터 배운 건 하나입니다. '먼저 사람이 되라. 재주만 남으면 그림이 천해진다.' 난 자식들 작품을 칭찬해본 적 없습니다. 선대에 누를 끼칠까 봐 더 자세를 낮췄지요."
셋은 24일 전남 무안에서 문을 여는 '오승우 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오 화백의 작업실에 모였다. 오승우 화백은 자신의 작품 170점을 무안군에 기증했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봤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는 아버지 고 오지호 화백의 작품 32점도 국립현대미술관에 모두 기증했다.
3대인 오상욱 교수는 강원도 평창에 '평창무이예술관'을 만들어 자신과 동료 조각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올해 10년째로 지금까지 40만 명이 방문했다. '우리 문화의 우수함을 밖으로 알려야 한다'며 사재를 털어 중국 칭다오에도 조각공원을 조성 중이다. 남태평양 뉴칼레도니아와 미국 인디애나주 밀빌시에서도 조각공원 조성에 관한 제의를 해와 협의 중이다.
"예술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 역시 우리 집 전통입니다. 예술의 기쁨을 널리 나누자는 거죠. 가정으로 작품이 한 번 들어가면 웬만해선 못 나옵니다. 도둑맞는 경우도 있어요. 딸자식 시집 보내는 것 같은 허전함도 크지만, 우리가 예술하는 이유는 돈이 아니잖아요."(오승우)
고(故) 오지호 화백은 2남 5녀를 뒀다. 이 중 장남·차남인 오승우·오승윤(별세) 화백이 서양화가의 길을 걸었다. 오승우 화백의 두 아들 오병욱(동국대 미대 교수)·오상욱씨는 각각 서양화와 조각을 전공했다. 오승우 화백의 손자 대(代)에서도 손주 8명 가운데 오제성씨가 미술을 하겠다고 나섰다.
"우리 때만 해도 예술을 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했었죠. 평생 노력하고 인내해야 한다는 각오도 돼 있었어요. 지금 젊은이들은 빠른 것, 돈 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아요. 8명 손자 중 제성이가 유일하게 이어받겠다고 나선 걸 보면, '숨통이 끊어지진 않겠구나'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좀 씁쓸하지요."(오승우)
"예술의 목표는 '대가'의 탄생이라고 생각합니다. 1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지요. 저희가 대를 이어 예술하는 이유도, 이렇게 한집에서 여러 명이 하면 대가가 나올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해서예요(웃음)."(오상욱)
"어렸을 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증조할아버지(오지호) 회고전을 보고 가슴 벅찼어요.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수영을 하세요. 네 시간 이상 안 주무시면서 작품에 모든 걸 쏟으시죠. 아버지도 예술적 고집이 대단하십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레 미술이 제 천직이라고 여겼어요. 물론, 두 분을 따라가려면 갈 길이 멀겠지만…."(오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