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미술관에 가면 3400㎡의 공간에 자기(磁器)로 빚은 해바라기씨 1억개가 깔린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터빈홀(기획전시실)을 채우고 있는 중국 작가 아이 웨이웨이(Weiwei)의 설치미술 '해바라기씨(Sunflower Seeds)'다.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이 흥미로운 전시는 글로벌 기업 유니레버 덕분에 가능했다. 유니레버는 지난 2000년부터 '유니레버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루이스 부르주아 등 세계적인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테이트 모던에 초청하고 있다.

일본 나오시마에 있는 구사마 야요이의 설치미술‘펌프킨’. 베네세 그룹은 버려지다시피 했던 섬을 미술관으로 재생시켰다.

이 시리즈의 하나로 2006년 전시된 '테스트 사이트(Test Site)'는 미술관을 놀이터로 변형시켜 큰 인기를 끌었다. 나선형 미끄럼틀 5개로 이루어진 거대한 설치작품이었다. 5층 높이의 터빈홀에서 내려오는 58m 길이의 미끄럼틀도 있었다. 어린이는 물론 양복을 입은 신사도 이걸 타려고 줄을 섰다. 관람객을 전시의 일부로 끌어안은 것이다. 유니레버는 해마다 200만명 넘게 관람하는 이 시리즈를 통해 창의적인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높였고, 당초 2005년까지로 잡았던 이 프로젝트를 2012년까지 연장했다.

기업의 예술 후원은 낙후된 지역을 재생하기도 한다. 일본 가가와현의 작은 섬 나오시마(直島)는 구사마 야요이의 설치미술 '펌프킨'이 선착장에서 방문객을 맞는다. 일본 베네세 그룹은 구리제련소가 들어서 황폐화됐던 이 섬을 연간 50만명이 찾는 미술섬으로 부활시켰다. 잭슨 폴록과 데이비드 호크니 등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들로 베네세 미술관을 채웠고, 땅속에 지중(地中)미술관을 만들어 인상파 화가 모네의 '수련'을 걸었다. 지난해에는 한국 작가 이우환의 작품을 모은 이우환미술관도 문을 열었다.

해외의 예술 후원 활동은 다각도로 전개되고 있다. 기업보다 개인의 기부가 많고, 일방적인 사회공헌이 아닌 쌍방향이고, 중앙이 아니라 지역에 골고루 흩어져 있다는 게 한국과 다른 점이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진행된‘유니레버 시리즈’중 미술관을 놀이터로 변형시킨‘테스트 사이트’.

호주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2009년 멜버른 산불 이후 그 지역 5개 초등학교에서는 15개월 동안 '희망의 노래'(Music for Hope)라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집이나 가족·친구를 잃은 아이들은 악기와 음악을 배우고 공연에 참여하면서 화마(火魔)의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스트라스웬 초등학교의 제인 헤이워드 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산불로 학교를 잃고 간이학교에서 수업하던 때 우리의 바람은 앞으로의 생활이 예전과 다름없을 것이라는 안정감이었다"면서 "'희망의 노래'가 어느 순간 우리 아이들을 흥얼거리게 했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코카콜라 호주법인이 후원했다.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소장품을 지구촌 어디서나 인터넷으로 관람할 수 있는 건 IBM의 '이컬처(E-Culture) 프로젝트' 때문이다. IBM은 이집트 문화역사 포털사이트인 '영원한 이집트'(Eternal Egypt) 구축에도 250만달러를 투입하는 등 자체 기술력을 활용해 세계 문화재 복원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메세나협회 이병권 사무처장은 "일본 나오시마의 경우 관광객이 몰려오면서 기업이 투자한 원금을 회수했고 2009년부터 수익을 내는 구조가 됐다"면서 "예술을 통해 기업 내부의 창의성을 가꾸는 활동도 우리가 배워야 할 모델"이라고 말했다.

※ 메세나(Mecenat)란?
문화예술 활동이 점점 활발해지면서 이를 지원하는 기업입니다.

[블로그] 교통편 불편하지만 나오시마는 가볼만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