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22번지의 'Parc1' 공사 현장은 이상할 정도로 한산했다. 트럭이 지나가는 것도 보기 힘들었다. 72층짜리, 56층짜리 등 4개 건물에 국제 공인 축구장 88개만큼의 공간(연면적 62만7680㎡)이 만들어지는 대역사(大役事)의 현장이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Parc1은 정부와 서울시가 입만 열면 "국제 금융 허브를 만들겠다"고 앵무새처럼 말하는 '서울 여의도 금융중심지 조성 사업'의 최대 공사.
이 Parc1 사업은 최근 중단됐다. 시행사인 Y22프로젝트금융투자측은 "토지 소유주와 분쟁이 해결될 때까지 기약없는 지체 상태"라고 표현했다. 현재 공사는 25%만 끝난 상태. 자금 조달을 주관하고 있는 신한은행은 "자금 사정이 많이 나아져 돈을 빌려주겠다는 신청을 조기 마감할 계획도 세웠었지만, 지금은 조달을 중지했다"라고 말했다. 시공사인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돈을 못 받을 위험이 있는데 공사를 진행할 수는 없다"며 "가장 기본적인 작업만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분쟁 시작→자금 조달 중단→공사 중단의 순서로 파장이 커진 것이다.
분쟁은 땅 소유주인 재단법인 세계기독교 통일신령협회 유지재단(통일 재단)과 99년 이용할 수 있는 지상권을 가진 외국계 회사 Y22(시행자는 스카이랜) 사이에서 일어났다.
땅 주인과 지상권자 분쟁
재단은 10월 29일 Y22를 상대로 Parc1 부지인 여의도동 22 일대에 대한 지상권 설정 등기를 말소하라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Y22에 돈을 빌려준 14개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근저당권을 말소하라고 했다.
재단은 Y22에게 이 땅을 99년 동안 사용하는 권리를 주고 공시지가의 5%를 매년 받는 계약을 2005년 5월 맺었다. 이후 재단은 5년 만에 이것이 무효라는 소송을 냈다. 11월 중순에는 신도들이 공사현장 앞이나 관련 금융기관 등에서 "여의도 파크원 통일교 성지는 통일교 선교본부로"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촛불 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재단 관계자는 "국가 정책 사업을 방해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다투는 부분은 지상권을 설정할 때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았어야 하느냐 받을 이유가 없었느냐는 부분이다. 재단은 지상권 설정이 무효인 이유가 국가의 허가를 받았어야 하는데 안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단법인의 기본 재산에 관한 정관을 바꾸려면 주무관청의 허가가 있어야 하는데, 받지 않았으니 무효라는 것이다. Y22측은 정반대로 "공익 법인이 아닌 재단 법인의 지상권은 주무관청의 허가가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양측은 팽팽하다. Y22측은 "계약을 갑자기 뒤집겠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도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단은 "Y22가 우리에게는 아무런 말 없이 건물을 처분하고 있어 설정기간인 99년 뒤에 돌려받기 어려워졌다"며 "이해관계자들의 정당한 권익이 보호되는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여의도 금융 중심지 삐거덕
이 분쟁이 끝나기 전에 사업이 정상화될 가능성은 없다. 단순하게 말하면 지상권은 Y22측이 돈을 빌리는 담보이며, 공사 자금이 이를 바탕으로 조달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사업의 총 비용은 모두 2조3000억원. Y22측은 "약 2500억원의 초기 자본금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공사 자금을 금융권에서 빌리고 이는 건물의 이용권을 팔아 갚는다는 계획이었다.
실제로 56층 건물은 미래에셋에 8047억원을 받고 이용하는 권리를 팔기로 MOU를 맺었다. 72층 건물의 이용권도 맥쿼리에 팔기로 논의 중이었다. 그러나 이건 지상권에 분쟁이 없을 때 가능했던 얘기다.
이로써 서울 여의도 금융 중심지 사업은 반쪽짜리가 될 위기에 처했다. 금융위원회는 서울과 부산에 한 개씩 금융중심지를 올 1월 지정했다. 홍콩, 상하이 등과 겨룰 수 있는 국제 금융의 메카를 만들겠다는 욕심이었다. 금융위와 서울시는 국회의사당을 뺀 여의도 전역을 지정했고 세제 혜택 등의 지원책이 추진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업무 공간, 쇼핑몰, 특급호텔이 새로 들어가는 중심업무권역에 Parc1, SIFC(서울국제금융센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