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30초면 방범창 뜯고 방 안에 침입할 수 있습니다. 저쪽 건 10초도 안 걸리겠는데요."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서울 구의동 골목을 둘러보던 박현호(39) 용인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표정이 심각했다. "허술한 창은 범인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나 다름없는데…." 지난 9월 이 동네에서는 반지하 방에 혼자 사는 30대 여성이 화장실 창문을 뜯고 침입한 이웃 주민에게 성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박 교수는 범죄 차단 기능이 없는 '무늬만 방범창'은 빨리 교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국의 자치단체와 연구소 등을 찾아다니며 "방범 기능을 갖춘 창문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강연과 세미나를 200번 넘게 이어왔다. 그는 서울 서남부 연쇄 살인범 정남규의 봉천동 세 자매 살상 사건, 여성 100여명을 성폭행한 대전 발바리 사건 등을 예로 들며 "범인은 늘 허술한 창문과 출입문을 노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범인이 쉽게 부술 수 없는 안전한 방범창만 있어도 범죄를 절반 이상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 출신으로 빈민가에서 자취하며 고교 시절을 보낸 그는 하루걸러 들려오는 주변의 절도·강도·강간사건 소식에 몸서리쳤다. 경찰대 졸업 후엔 전주 일선 경찰서 형사과와 파출소장으로 근무하며 혼자 사는 20~30대 여성 성폭행 사건을 숱하게 처리했다. 박 교수는 "돈 없고 힘없는 이웃을 안전하게 지켜줄 대안을 찾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이후 영국 포츠머스대로 유학 가서 '셉테드(CPTED)' 이론을 접했다. 주택·사무실·공원 등 생활환경을 설계부터 범죄를 예방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박사 논문도 '공동주택 주차시설의 범죄방어공간에 대한 연구'였다.
2005년 귀국한 박 교수는 인천 주안 여고생 살해 사건을 접하고 다시 충격받았다. 포르노 사이트에 중독돼 잠자는 부녀자들을 훔쳐보며 비틀린 성적 욕구를 채우던 20대 회사원이 여고 1년생 방에 침입해 성폭행하고 목 졸라 살해한 사건이었다. 범인은 달랑 모기장 하나뿐이던 창문을 통해 쉽게 들어갔다.
박 교수는 "영국·네덜란드 같은 유럽에서는 '범인이 문을 따려고 시도했을 때 적어도 3분 이상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방범창 기준이 있다"며 "우리도 취약지역의 방범창과 출입문은 공인기관이 방범 성능을 인증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범죄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분 이상 뚫리지 않으면 75%, 5분이 넘어가면 90% 이상이 범행을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박 교수는 "나도 초등학교 1학년 큰아이부터 유치원 다니는 둘째, 15개월 된 막내까지 딸만 셋"이라며 "튼튼한 방범창이 설치돼 모두가 두 발 뻗고 잘 수 있도록 몸이 부서지라 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