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순아~!" 지난 4일 과천 서울동물원 신(新)유인원관. 사육사 박현탁 주무관이 부르자 실내 동물 우리 안에서 놀던 13살짜리 암컷 침팬지 갑순이가 창살 쪽으로 쪼르르 다가오더니 웅크리고 앉았다. 갑순이는 실내 우리 창살 밖에 설치된 컴퓨터 모니터에서 동영상이 흘러나오자 1~2분 동안 목을 빼고 영상을 뚫어지게 봤다가 다시 고개를 휘휘 돌리며 딴청 피우기를 반복했다. 모니터에서는 야생 상태에서 침팬지 어미와 새끼들이 함께 개미를 잡아먹거나 서로 털을 골라주는 장면들이 상영됐다.
"작년 8월 새끼 광복이를 낳고도 보살피는 방법을 몰라 그냥 내버려두고 어쩔줄 모르는 갑순이에게 '나머지 공부'를 시키는 겁니다. 자연 상태라면 무리생활을 하면서 아기 낳고 기르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겠지만 동물원에서는 그러지 못해 이런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서울동물원은 올 초부터 갑순이를 비롯한 침팬지들에게 새끼 기르기 '교육용 동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갑순이가 버린 새끼 광복이를 사육사들이 맡아 기르게 되면서 야생 생활을 하지 못하는 침팬지들에게 '부모 역할'을 가르쳐 주기 위해 짜낸 묘안 중 하나다. 침팬지가 영리한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언제 모니터를 부술지 몰라 동영상 교육은 실내 우리 쇠창살 밖에 컴퓨터 모니터를 설치해 두고 5일에 한 번꼴로 진행한다. 침팬지들은 모니터 동영상을 틀어주면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한동안 집중한다는 게 사육사들의 설명이다.
특히 올 4월 새끼 까미를 낳은 12살짜리 암컷 침팬지 주디를 위해서는 새끼를 버리는 일을 막기 위해 강도 높은 동영상 교육을 했다. 출산 전 두 달 동안 자연생활 다큐멘터리 동영상 강의를 6차례나 보여주었다. 이 덕분인지 주디는 초산(初産)임에도 항상 새끼를 배에 찰싹 껴안고 다니는 등 동영상에서 본 야생의 어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동영상 교육이 항상 먹히는 건 아니다. 서울동물원은 세계적 희귀종이자 국내에도 암수 각각 한 마리씩 있는 로랜드고릴라의 '2세 만들기 작전'에서도 동영상 교육을 시도한 적이 있다. 지난 2004년부터 4년 동안 한 달에 한두 번씩 야생에 사는 로랜드고릴라의 짝짓기 장면이 담긴 '성인용 교육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박 주무관은 "이런 짝짓기 동영상은 고릴라에게는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대신 고릴라들을 위해서는 산부인과 의사를 초빙해 암수컷 성 기능 검진을 하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정력 강화 약품도 먹여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