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훈 관장이 10월 30일 일산 자신의 태권도장에서 창헌류 세미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는 외국인을 포함해 40여 명의 성인 수련자가 참석했다.

‘한국에서 태권도는 누가 배우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무어라고 대답할 것인가? 태권도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초등학생 이하의 아이들’이라는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그 만큼 한국 태권도장의 주 ‘고객’은 아이들이다. ‘태권도장(道場)’이라는 말보다는 ‘태권도체육관(gym)’이라는 말이 더 익숙할 정도로 현재 국내 태권도장은 아이들의 체육활동을 포함한 놀이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상황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이에 대한 태권도 전문가들의 대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왜냐하면 국내 출산율이 심각하게 저하된 상황에서 태권도장의 주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초등학생의 숫자가 해가 갈수록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인구가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는 것은 국내 태권도장이 생존을 위해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느냐는 것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미래의 태권도장의 모습은 성인 수련이 활성화된 태권도장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국내 태권도계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8월 국기원은 강원식 국기원장이 나서서 직원들에게 태권도 수련을 강조하고 인근 직장인들을 포함한 성인을 대상으로 국기원에서 무료 태권도 수련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9월에는 대한태권도협회에서 ‘청소년 및 성인 수련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에 대해 아직까지 일선 태권도장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으로 되돌아오고 있지는 않는 것이 현재 국내 태권도계의 현실이다.

그 이유에 대해 김재훈 관장은 “많은 국내 태권도 지도자들이 성인들을 제대로 지도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지적한다.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지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재훈 관장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김재훈 관장은 누구인가?

김재훈 관장은 현재 미국 보스톤과 한국 일산, 싱가포르 등에 13개의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 태권도 지도자다.

김 관장은, 태권도 지도자로서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라는 점으로도 여러 차례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다.

시쳇말로 하자면 김 관장이야말로 ‘엄친아’였다고 할 수 있다.

김 관장은 미국 MIT를 거쳐 하버드대학에서 MBA과정을 졸업했다. 이후 미국 유수의 기업인 제너럴 모터스(GE)에서 북태평양 사업단 부사장에까지 오르며 억대 연봉을 받는 촉망받는 기업가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러던 그가 ‘진정 사랑하고 행복했던 순간은 태권도를 수련하고 지도하는 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태권도 지도자로서 직접 도복을 입고 수련생들과 함께 평생을 태권도에 빠져 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을 찾은 김재훈 관장이 2개의 주제로 무료 공개세미나를 준비했다. 지난 10월 30일에는 ‘창헌류’, 오는 11월 6일에는 ‘성인 태권도’가 주제다. 창헌류와 성인 태권도는 관련이 되어 있으니 어느 세미나에 참석하건 김 관장이 말하는 핵심은 얻어갈 수 있다. 핵심은 ‘창헌류를 통한 성인 태권도’다.

그렇다면 성인들이 태권도를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태권도 지도자들은 성인들과 아이들의 차이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사범이나 관장이 가르치는 데로 별다른 저항없이 따라하지만, 성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국내 태권도장에서 강조하는 ‘인성교육’ 같은 것이 성인들에게 통할 리는 없으니까요. 태권도 사범이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배운 것도 많고, 사회적 지위도 높다고 평가되는 사람들을 가르치려면 무얼 해야겠습니까. 바로 태권도밖에 없습니다. 태권도 사범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태권도를 제대로 가르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제 도장에 성인들이 많은 이유에 대해 비법이 없느냐고 물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비법이라면 태권도가 비법일 뿐입니다.”

태권도 사범들이 태권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이 동작과 저 동작이 공격과 방어에서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는지, 품새에 있는 동작들이 어떠한 원리를 가지고 있고,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닌, 직접 몸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김 관장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서른 살만 넘어도 도복을 입지 않고 사범들에게만 지도를 맡기는 배 나온 관장님들이 수두룩한 것이, 부끄럽지만 국내 태권도장의 현실이다.

“아이들의 경우 10명이 입관하면 그 중 7,8명이 남을 수는 있어도 이 아이들이 5년 이상 길게 수련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성인들은 10명이 입관하면 남는 사람은 2,3명일지 몰라도 이들은 태권도에 재미를 느끼고 태권도를 정말 좋아하게 되어 5년, 10년 이상 계속 관계를 이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성인들은 겨루기보다는 품새에 재미를 느끼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배울 수 있는 품새가 더 다양하고 더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김재훈 관장의 말은 현 국기원 품새의 빈약함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진다.

“현재 국기원 태권도 품새는 유급자 태극 품새 8개와 유단자 품새 고려부터 일여까지 9개를 포함해 총 17개가 있습니다. 유단자 품새가 9개밖에 없다는 것은 유단자가 품새에 재미와 깊이를 느끼며 오래 수련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태극 품새는 성인이 아닌 어린이를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또 초단을 취득한 후 2단까지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지정되어 있는 품새가 고려 하나라는 것은 수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여기서 김재훈 관장이 내놓는 해결책이 창헌류다. “창헌류는 1972년 태극 품새가 나오기 이전에 이미 국내 태권도계에서 수련했던 품새입니다. 없었던 것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원래 우리 것이었던 것을 다시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김 관장이 말하는 창헌류는 국제태권도연맹(ITF) 최홍희 총재의 아호를 딴 품새(틀)를 말한다.

창헌류는 천지, 단군, 도산, 원효, 율곡, 중근, 퇴계, 화랑, 충무, 광개, 포은, 계백, 의암, 충장, 고당, 삼일, 유신, 최영, 연개, 을지, 문무, 서산, 세종, 통일의 24개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도장에서는 국기원 품새와 창헌류를 모두 가르칩니다. 그런데 성인들을 지도하다 보면, 창헌류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경우를 더 많이 보게 됩니다. 창헌류를 수련해보면 합리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라데를 비롯한 다른 무술들과의 차이도 분명하게 드러나죠.”

사진 위가 싸인웨이브가 없는 창헌류식 정권 지르기. 사진 아래가 싸인웨이브가 포함된 ITF식 정권 지르기.

그런데 여기서 김 관장이 말하는 창헌류는 ITF의 틀과 차이가 있다. 우선 형태는 동일하다. 한 가지만 빼고. 그것은 고당 틀이다. 고당 틀은 최홍희 총재가 북한과 관계를 맺은 후 주체 틀로 바뀐다.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내용도 바뀌었다는 것이 김재훈 관장의 설명이다. 여기서 고당(古堂)은 독립운동가인 고당 조만식 선생을 의미하고 주체(主體)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창헌류와 ITF의 차이란 어떤 것일까?

우선 겉으로 드러난 차이를 보면, ITF 틀이 동작마다 휘파람 소리와 비슷한 ‘휘잇’ 하는 소리를 내는데 비해 창헌류에서는 그러한 소리를 전혀 내지 않는다. 그리고 ITF에는 ‘사인웨이브’라고 하는 독특한 움직임이 있는데 비해 창헌류에서는 그러한 움직임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에 대해 김재훈 관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제가 최홍희 총재로부터 창헌류를 배운 것은 최 총재가 5~60대이던 시절인 1960년대와 70년대입니다. 그런데 최 총재가 북한과 관계를 맺은 1980년 이후 창헌류는 현재의 ITF 틀로 변형되었습니다. 비교를 하자면 창헌류는 보다 강한 스타일의 ITF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승이 젊을 때 배운 제자의 스타일과 스승이 늙었을 때 배운 제자의 스타일에 차이가 있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예를 아이키도(合氣道)의 창시자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와 그의 제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많은 제자들을 두었는데, 우에시바가 60세 이전에 배운 제자들의 스타일과 그 이후에 배운 제자들의 스타일에는 차이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빠르고 강한 스타일과 부드럽고 느린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제자로 요신칸 아이키도의 시오다 고조(鹽田剛三)를, 후자의 대표적인 제자로 한국 아이키도를 대표하는 윤대현 관장의 스승 고바야시 야스오(小林保雄)를 들 수 있다.

최홍희 총재로부터 직접 배운 제자라는 자부심을 감추지 않는 김 관장이지만, 최 총재가 북한과 가까워진 이후 달라진 것은 단지 품새(틀)의 스타일만이 아니었다.

최홍희 총재가 북한과 가까워진 이후, 최 총재를 따르던 많은 제자들이 최 총재로부터 등을 돌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김재훈 관장은 최 총재와 1980년 이후 다른 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었지만, 스승에 대한 존경심만큼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일산의 김재훈 태권도장에는 최홍희 총재가 김 관장에게 직접 써준 친필 휘호 2점이 걸려있다.

최홍희 총재가 김재훈 관장에게 직접 써준 휘호. (좌)'일당천' 위 태권도계 기린아 김재훈 군. 1974년 6월 창헌 최홍희. (우)'태권도' 위 태권도사범 김재훈 군. 1974년 6월 창헌 최홍희.

벌써 35년 전이지만 아직도 이 글을 써주던 스승의 모습을 김 관장은 기억하고 있었다.

“총재님께서 먹을 갈아두라고 하셔서 밤새 먹을 갈았습니다. 그 다음날 먹물을 보시고는 ‘잘 갈아졌다’하시고는 큰 붓을 들고 화선지 위에 서서 일필휘지로 글씨를 써 주셨습니다.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김재훈 관장을 보고 기자는 두 가지에 놀랐다. 우선 그의 실제 나이. 거짓말 안 보태고 실제 나이보다 10년도 더 젊어 보였다. 두 번째는 그의 시범. 김 관장의 얼굴만 본다면, 무술가라기 보다는 대학 교수나 기업체 CEO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만큼 겉모습 만큼은 유약해 보인다는 것. 저 사람이 무술을? 그러나 실제 세미나에서 보여주는 그의 시범을 보면, 어떻게 저런 얼굴에서 저런 파워와 에너지가 나올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말 그대로 외유내강. 김재훈 관장 같은 사람이 있는 한 태권도의 미래는 밝다.


박성진 태권도조선 기자 kaku6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