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29일 간첩죄 등으로 기소돼 1959년 사형이 집행된 조봉암(曺奉岩) 전 진보당 당수의 유족들이 낸 신청을 받아들여, 재심(再審)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대법원은 이날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체(재판장 이용훈 대법원장)를 열고 "조봉암 피고인은 불법적인 수사로 기소가 됐기 때문에 재심이 필요하다"며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다.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진 것은 조봉암의 장녀 조호정(82)씨 등 유족들이 2008년 8월 재심 신청을 낸 지 2년여만이다.

죽산(竹山) 조봉암은 모스크바에 유학하는 등 좌익(左翼) 계열 독립운동의 대표격이다가 해방 이후인 1946년 공산당을 탈당하면서 좌우합작과 남북협상 노선을 걸었다.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제헌(制憲)국회의원·초대 농림부장관을 지냈다. 1952년과 1956년 대통령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각각 80여만표와 200여만표를 얻으며 바람을 일으켰으나 낙선했고, 이후 진보당을 창당해 당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1958년 북한에 밀사를 파견해 지령을 받고 북한으로부터 진보당 운영자금을 받았다는 혐의(간첩, 국가보안법위반) 등으로 육군 특무부대의 수사를 받고 기소됐다.

법원은 이른바 '진보당 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 재판의 1심에서는 간첩혐의를 무죄로 해 징역 5년을 선고했으나, 2심과 3심(대법원)은 사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1959년 7월 30일 조봉암이 낸 재심도 기각했고, 정부는 재심이 끝난 바로 다음 날인 7월 31일 사형을 집행했다. 이 때문에 당시 자유당 정권이 정적(政敵) 제거를 위해 '사법살인'을 벌였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고, 진실화해위는 2007년 재심을 권고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이번 전원합의체를 통해 "피고인(조봉암)의 혐의는 군부대에 간첩으로 잠복하거나 군에서 간첩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므로 국방경비법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고, 군인이나 군속이 아닌 일반인은 육군 특무부대가 수사할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어 "육군 특무부대가 피고인을 피의자로 조사하고 신문한 행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한 것이며, 사법경찰관의 직무에 관한 범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이례적으로 법률 적용의 잘잘못만 따진 것이 아니라 사실 관계까지 직접 조사했다. 1959년 당시 대법원이 징역 5년과 사형으로 엇갈린 하급심의 판결을 깨면서 하급심에 돌려보내 다시 판단하도록 하는 통상적인 절차(파기환송)를 밟는 대신에, 스스로 사형을 확정해 버린(파기자판)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번 재심개시 결정의 취지가 '수사기관이 불법적인 수사를 해서 기소한 것'이기 때문에 재심이 진행되면 죽산 조봉암에게는 무죄(無罪)가 선고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번 전원합의체 결정을 통해 이 같은 불법적인 수사권 행사 등의 문제를 당시 법원이 왜 재판에서 지적하지 않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