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볕이 좋던 몇 일 전 오후, 초라한 행색의 아주머니 한 분이 분홍색 보자기에 서류뭉치를 고이 싸서 필자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사연을 들어보니 아주머니의 외아들이 대학 재학 중 군에 입대하여 해안초소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새벽 보초근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중 인근의 빈 초소에서 목과 머리에 관통상을 입은 채 신음하는 상태로 발견되어 곧바로 군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회복되지 못하고 사망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군의 조사결과로는 아주머니의 아들이 보초근무를 서던 중 순찰 중인 간부에게 근무상태를 지적받게 되자 선임병의 질책과 얼차려가 두려워 주둔지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인근 빈 초소에 들어가 휴대한 소총으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주머니의 아들은 평소 활달한 성격에 친구도 많고 인간관계가 원만하였으며, 군생활도 적극적으로 잘 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무리 선임병의 질책이 두려웠다고 해도 그 무서운 총부리를 스스로의 목에 겨눌 정도로 모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군의 조사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였는데, 위원회의 재조사 결과도 다를 바 없었다고 한다.
부모로서 답답한 심정을 가눌 수 없는데다 달리 하소연 할 곳도 마땅찮아서 필자를 찾아 왔다는 아주머니에게 필자는 "국가유공자로 인정되기도 어렵고,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도 많이 지난 상황이며, 업무상 스트레스 또는 선임병의 구타나 가혹행위 등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자살에 이른 경우 외에는 순직으로 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답변과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위로의 말밖에 달리 도와드릴 방법이 없었다. 별 다른 법적 방법을 찾지 못한 아주머니는 "지난 4년간 억울한 죽음에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차디찬 냉동고에서 금쪽같은 아들의 시신이 얼마나 추웠겠어요. 보초서다가 죽었으니 국립묘지에라도 가야 되는 것 아닙니까. 나라의 부름을 받고 간 길이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자식을 전과자로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하던 군에 가지 못하게 했을 건데"라고 통곡을 하면서 필자의 사무실을 나갔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전체 군 사망사고 113건 중 자살에 의한 사망사고는 81건이고, 지난 10년간 매년 평균 80여명이 군복무 중 목숨을 끊는다는 통계가 있다. 2006년 이후 군 내부 사망사고 유형별 현황을 보면 사망사고 383명 중 자살이 232명으로 이는 10명 중 6명 꼴이라고 한다.
우리사회에서 고위 공직자나 인기 연예인 및 운동선수의 병역기피가 문제화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국민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병역의무의 이행을 위해서는 '군대는 반드시 다녀올만한 곳이고 그래야만 하는 곳'이라는 공감대의 형성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게 되려면 병역의무 이행과정에서 다치거나 죽을 경우 조금의 억울함도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2008년 3월28일경 '자해 사망자'의 국립묘지 안장금지 조항을 삭제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개정으로 복무 중 자살자라 하더라도 부대내 구타 등 복무관련성이 확인돼 해당기관에서 순직으로 인정될 경우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군 당국에서도 군복무중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그 원인에 대한 철저하고도 객관적인 조사를 하여 위와 같이 비록 자살의 개연성이 있더라도 확증이 없는 한 '적어도 군사지역 내에서 임무수행 중에 사망한 경우'에는 그 기준을 완화하여 순직으로 처리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앞으로도 해마다 발생하는 안타까운 죽음과 그 가족들의 씻지 못할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책이 보다 적극적으로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