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닉 러브'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육체가 배제된 순수하고 정신적인 연애'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 말의 본뜻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플라토닉 러브'란 원래 플라톤이 '필로소피아(philosophia·지혜를 사랑하는 것)'를 추구하는 스승 소크라테스의 열정을 두고 한 말에서 비롯되었다.

교육철학 박사로 강원대 교육학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삶과 철학을 매개로 교육학적 측면에서 '플라토닉 러브'를 재정의하려 시도한다. 저자는 우선 "'필로소피아'는 오늘날 '철학'을 뜻한 단어가 되었지만, 그 기원에 있어서 '철학'이라기보다 '교육'이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라고 전제한다. 이후 저자는 '교육이란 무엇을 가르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소크라테스의 교육 방식에서 찾고자 한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교육이 추구해야 할 덕(德)은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웅변술이나, 논쟁에서 타인을 눌러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디알렉티케(dialektike·대화), 곧 이성이 이끄는 길을 따라 사고를 올바르게 하는 능력이었다."(136쪽)

저자는 인간의 지적 욕구를 신(神)의 속성을 갖고자 하는 열망과 동일시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앎에 대한 추구는 결국 신의 것을 인간에게로 가져오기 위한 노력이었고, '플라토닉 러브'란 '영혼이 지혜를 사랑하여 그것을 나누어 가지려는 열정'으로 풀이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육의 모습은 신의 것인 지혜를 인간과 나누고자 하는 소크라테스의 열정과 일치한다. "'플라토닉 러브'는 더 말할 나위 없는 '진정한 교육의 길'이었다. 오늘날의 교육과 교육학이 되돌아보아야 할 길이다."(232쪽)

'올바른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의 진지한 고민이 느껴지는 책이다. 소크라테스의 철학뿐 아니라 당시 그리스의 신화와 풍습, 종교와 교육, 정치와 사상의 흐름까지 꼼꼼히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