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중 연세대학교 총장

의예과 학생 시절, 교양과목을 수강하러 지금은 연세대 본관으로 변한 문과대학 건물을 자주 들락거렸다. 백양로가 끝나고, 좌우로 아름드리 벚나무가 도열한 교정으로 오르는 돌계단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뉴욕에 있는 우리 겨레로부터 붙여줌 1927'

내 눈에 왜 이 글이 오래도록 꽂혔을까. 나라가 가난하던 시절, 내 학창 생활도 가난했던 탓일까. '뉴욕, 우리 겨레, 1927'이라는 단어가 차례차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조국은 식민 치하, 머나먼 이국 땅 미국 '뉴욕'에서 살던 '우리 겨레'는 그들 자신이 먹고살 양식조차 구하기 쉽지 않았을 게다. 그런 그들이 돈을 모아, 조국에 세워진 한 대학의 계단 하나를 만들어 주기 위해 보인 정성이란…. 더욱이 '1927년'이면, 지금부터 까마득한 시절이다.

이 글귀가 쓰인 돌계단은 식민 치하 조국의 청년들이 해방의 씨앗, 건국의 거목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그들의 소망을 품고 있으리라. 나라 잃은 '우리 겨레' 그들은 이국 땅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조국의 청년들을 향한 기대와 간절한 소망을 담았으리라.

나도 이들의 바람처럼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였다. 무의촌 진료를 하고 보건소장을 하던 시절, 보잘것없는 치료를 받거나 약봉지 하나를 받고도 행복해하고 고마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의 이런 다짐은 더욱 굳어갔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나는 의사가 되었고 모교의 교수가 되었으며 그리고 지금은 총장으로 일한다. 내 인생의 명함이 바뀔 때마다, 일찍이 학창시절 돌계단에 새겨진 '1927년 뉴욕'을 바라보며 다짐한 결심을 실천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교수라면 교수대로, 총장이라면 총장대로…. 그러나 그 실천을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며 되레 부끄러워진다. 오히려 그런 이들을 찾아내고 발견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

지난 여름 졸업식에서 한 동문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 문과 재학 중 독립운동을 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느라 졸업하지 못한 고(故) 김상덕 동문이었다. 늦었지만 대학이 조국 사랑을 실천에 옮긴 분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가 하면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조진희 학생에게는 대학 최초로 '봉사 1000시간 인증' 메달을 수여했다. 이는 참으로 뜻깊은 메달이었다. 이 학생에게는 일찍부터 "누군가를 돕는 삶을 살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러기에 재학 중 휴학계까지 내고 자비를 들여 필리핀 마닐라의 아동보호시설로 달려갔다. 그 곳에서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이 학생이 기록한 봉사활동 기록은 1300시간이 넘었다. 나는 내 일처럼 기뻤다. 독립운동이, 봉사활동이 누구에게 보여주거나 기록을 세우기 위해서 한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묵묵한 저들의 발걸음을 떠올리며 기뻤다.

입학식이나 졸업식의 축사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곤 한다. "우리는 최고의 인재를 양성할 것이지만, 높은 곳에 올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억누르는 사람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아래로 향하는 엘리트, 많은 사람을 위해 섬기는 지도자,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을 낮추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웃과 세계를 섬기는 따뜻한 엘리트를 기르고자 한다." 이것이 우리 대학에 맡겨진 사명이라고 믿는다.

들뜬 분위기의 식장에서 학생들이 얼마나 내 말에 귀 기울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힘주어 말한다. 흔히들 리더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진정한 카리스마는 섬김에서 나온다. 섬김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만든다. 나는 섬김 없는 카리스마보다 카리스마 없는 섬김을 차라리 택할 것이다.

최근에 한 아는 사람으로부터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신라의 마지막 현군(賢君)으로 일컬어지는 왕이 경문왕이다. 왕족의 일원으로 그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왕이 불러 그를 시험해 보았다. 전국을 다니며 심신 수련하는 동안 어떤 좋은 일을 보았느냐고. 스무 살의 왕자는 좋은 일 세 가지를 보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낮은 사람들보다 겸손하게 사는 이가 첫째요, 큰 부자이면서 검소하게 옷을 입는 이가 둘째요, 본디 귀하고 힘이 있으면서 그 위세를 쓰지 않는 이가 셋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그의 어진 성품에 감동하여 자신의 후계자로 삼겠다고 선언을 하였다. 왕이 감동한 요체는 섬김이었고, 이 덕목이야말로 나라를 이끌어갈 리더로서 가장 긴요했으리라. 이것이 어찌 신라만의 덕목이겠는가.

1927년 뉴욕의 우리 겨레는 조국의 젊은 인재를 기르는 대학에 돌계단을 바쳤다. 이 계단을 밟고 오르며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라고 했을 것이다. 대학을 나와 출세하고 돈 벌어 혼자만 잘살라는 뜻의 계단은 아니었을 것이다. 계단 위의 목표가 있지만, 계단 아래 사람이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라는 뜻이 담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