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바라보는 눈은 대개 상식의 테두리에 갇혀 있다. 하모니카는 각진 옥수수처럼 생겨야 하고 플루트 같은 피리들은 대나무처럼 가늘고 길어야 한다. 그럼 기타·바이올린 같은 현악기는? 기다란 네크와 곡선형 보디, 즉 울림통이 있어야 사람들은 기타라 하고 바이올린이라 알아본다.

그런데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의 기타리스트 이원재가 무대에 설 때면 가끔 그의 손에는 '각목' 하나가 쥐어져 있다. 멀리서 보면 틀림없이 사람 패기 딱 좋은 나무 몽둥이로 보이는데, 그가 줄을 퉁기면 찢어질 듯한 전자음이 폭발하는 것이다. 그가 말했다. "단 한 음도 제소리를 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쳐보니 소리가 공격적으로 확 튀어나왔다. 공연에서도 애용한다." 헤비메탈 밴드 블랙신드롬의 김재만은 "어디를 가든 이 기타를 차에 두고 다닌다"며 "최근에도 제주도에 여행 가면서 호텔 방에서 이 기타로 혼자 연습을 했다"고 했다.

그룹 노라조의 멤버 이혁이 모처럼‘로커’답게 포즈를 취했다. 손에 들린 기타는 울림통이 없이 네크만 있는 국산 악기 미니스타다.

울림통 없이 네크만 있는 비상식적인 이 기타 이름은 '미니스타'다. '메이드 인 코리아', 정확하게는 '디자인 인 코리아'다.

미니스타는 악기 생산업체인 한국뮤즈에서 개발했다. 어쿠스틱기타, 클래식기타는 물론 전자기타에도 필수요소로 여겨졌던 울림통을 없애버렸다. 울림통이 없으면 소리의 '부피'가 축소돼 음질이 떨어진다. 한국뮤즈는 "울림통을 대신하는 전자회로를 집어넣어 음질 저하를 막았다"고 했다.

기타 크기를 줄이는 이유는 '여행' '이동'에 편하기 때문이다. '여행용 기타(Travel Guitar)'로 불리는 기존의 소형 기타들은 울림통과 네크를 분리·조립하거나 아예 전체 크기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됐다. 그래서 연습용 혹은 놀이용 정도로 취급돼 왔는데, 미니스타는 음질까지 연주자급으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미니스타는 2008년 세계 최대의 악기 견본시장인 '남쇼(National Association of Musical Merchants Show)'에서 수천 종의 해외 신제품 기타들을 제치고 '올해의 발명상'을 받았다.

앰프도 내부에 장착해 기타를 직접 이어폰 혹은 스피커와 연결해 연주를 감상할 수 있게 설계했다. 클래식·포크·재즈 등 장르별로 특화된 12가지 종류의 미니스타가 시중에 나와 있거나 이달 중 출시될 예정이다. 세밀한 설계와 수정은 전문 기타리스트들인 한국뮤즈 직원들이, 생산은 중국에 설립한 공장에서 한다.

2008년 개발을 끝내고 지난해 해외시장에 출시한 이래 미국, 캐나다, 일본에 각각 3000대, 1000대, 2000대가 수출됐다. 유튜브에서 '미니스타' 'ministar'를 검색하면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이 날렵한 기타를 현란하게 연주하는 동영상 100여개를 만날 수 있다. 이 회사 사장 김광원씨는 "30년 넘게 외국 브랜드의 OEM으로 먹고살았는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도한 모험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한국뮤즈는 "작년 매출은 10억원 정도였지만 최근 입소문을 타면서 급속하게 수요가 늘고 있어 2년쯤 후에는 100억원대로 늘어날 것 같다"며 "1000억원대의 세계 여행 기타시장에서 최강자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국내 뮤지션들도 이 기타에 대한 관심이 높다. 록 밴드 지직스의 기타리스트 김태호는 "기타가 작고 가벼우면서도 제대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어디서든 연주를 할 수 있다"며 "게다가 앰프까지 달려 있어서 노트북만 있으면 녹음작업까지 할 수 있다"고 했다. 로커 출신인 노라조의 이혁은 "울림통이 없는데 신기하게도 좋은 소리가 난다"며 "해외에 좀 더 알려지면 기타 연주 인구가 더 늘어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