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대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다. 그의 연구실에는 비슷한 시기에 제자 넷이 있었다. 공학을 접고 의대로 진로를 튼 제자는 외제차인 렉서스를 탄다. 대기업 연구원으로 간 제자는 대형 세단인 SM7을 타고, 대학에서 계속 연구하는 제자는 준중형 승용차인 아반떼를 몬다.
그럼 나머지 한 명은 어떻게 됐을까? "자기 회사를 차렸는데 어디에 있는지 소식마저 끊겼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에서 '창업(創業)'만큼 빛이 바랜 단어가 있을까? 네이버 검색창에 창업을 쳐보라. 치킨집, PC방 창업, 쇼핑몰로 대박 나는 법이 잔뜩 뜬다. 벤처 붐은 실패한 기억이 됐고, 한발만 잘못 디디면 백수가 된다는 공포는 젊은이들을 취업용 스펙 쌓기로 내몬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주장한다. "왜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가? 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업이다. 위대한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라."
청년 실업시대, 속 편한 훈계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까지 자기 주장을 설득력 있게 풀어간다. 문장 하나하나가 경험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스탠퍼드대학을 졸업하고 실리콘 밸리와 한국의 몇개 스타트업(신생 회사)에서 일했던 저자는 한국에 돌아와 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서 2년간 근무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가 '뮤직쉐이크'라는 회사의 미국 지사를 차렸다. 신생기업을 위한 투자자문회사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저자는 우선 창업이란 게 특별한 사람이, 엄청난 아이디어를 가지고, 넉넉한 투자자를 만나야 가능한 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학벌이 좋아야 창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미국인 창업자 628명 가운데 상위 10위권 대학을 나온 사람은 19%에 불과했다는 조사결과를 소개한다. 창업 아이디어가 처음부터 획기적일 필요도 없다고 주장한다. 세계적인 기업이 된 HP의 창업 아이디어는 볼링장 거터(레인 옆의 도랑) 감지 센서였는데 그마저 수익을 못냈다. HP는 몇 번의 실패 뒤에 겨우 히트작을 냈다.
그럼 성공적인 창업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저자는 "쓸 만한 아이디어, 적당한 양의 돈, 좋은 팀이면 된다"고 말한다. 물론 이 요소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창업의 성패는 갈린다. 그래서 저자는 창업의 3대 요소(아이디어·돈·사람)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창업자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는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한다. 사업계획서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프로토타입(시제품)을 빨리 만들어라, 엔지니어를 우대하라 같은 조언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불안한 때에 가뜩이나 생존율이 낮은 신생기업을 차린다는 건 자살골 넣기가 아닐까? 이에 대한 저자의 반론이 흥미롭다.
"HP, 폴라로이드, 텍사스인스트루먼츠는 1930년 대공황 와중에 스타트업으로 시작했다. 불경기의 창업은 어렵지만 매력적이다. 경쟁자가 적어 투자받을 수 있는 돈이 그만큼 시장에 많기 때문이다."
창업 열병에 빠진 저자이지만 '창업=성공'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실리콘 밸리는 성공의 계곡일 뿐 아니라 죽음의 계곡이기도 하다"고 분명하게 경고한다.
책은 창업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를 위한 실전 교본인 동시에 한국 사회를 위한 조언도 담겨 있다. 가령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창업이 대중화하지 못하는 이유로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꼽는다. 그러면서 MSN메신저의 모태가 된 이스라엘 기업 ICQ의 초기 투자자인 요시 바르디의 말을 소개한다.
"솔직히 말해 나는 사업계획서는 보지도 않습니다. 어떤 성격의 사업인지도 신경 쓰지 않아요. 나는 오직 젊은 창업가에게만 투자합니다. 특히 실패한 경험이 있는 젊은이라면 성공할 확률이 더욱 커지지요."
한국은 미국과 달리 젊은 창업자들을 이끌어줄 선배 고수(高手)가 귀하다. 트위터(@khbae)와 블로그(www.baenefit.com)를 통해 미래 기업인들의 창업 고민을 나누겠다고 밝힌 저자의 노력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