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을 맞아 행락 인파가 늘면서 길거리나 야외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김승년 현대자동차 구매총괄본부장이 야외 운동을 하다가 심장마비 증세를 보인 지 1~2시간 만에 사망하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유동 인구가 많은 공공장소에 간단한 장비로 전기 충격을 주어 심정지 환자의 심박동을 회생시키는 자동 제세동기(除細動器·AED)가 깔리기 시작했다. AED는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도 쓸 수 있지만, 아직 이에 대한 홍보와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해 병원 밖에서 심장마비가 발생해 구급대로 이송된 환자는 약 2만명이다. 2006년에는 1만9477건, 2007년에는 2만356건 발생했다(질병관리본부 자료). 하지만 목격자에 의한 심폐소생술 실시율은 1.6%에 그쳤다. 미국의 16%에 비해 극히 저조하다. 이 때문에 국내 길거리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은 2.5%로, 미국의 8.4%에 비해 현저히 낮다(대한응급의학회). 심폐소생술과 AED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할 이유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자동제세동기

인천공항 대합실을 걷다 보면 곳곳에 소화전처럼 유리 박스 형태로 보관된 자동제세동기를 볼 수 있다. 심장을 상징하는 '빨간 하트' 문양의 표지가 있고, 영어로 자동제세동기를 뜻하는 'AED'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 있다. AED는 서울역 대합실과 각 승강장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의 태반은 AED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는 실정이다.

서울역에 있는 자동 제세동기 모습. 심장마비 환자에게 전기 충격을 주는 장비라는 의미의 하트 문양과 영어로 제세동기를 뜻하는 AED 글씨가 보인다.

AED는 사용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중학생 정도의 지적 수준이면 박스에서 나오는 안내 방송에 따라 작동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환자를 방치하지 말고, 일반인 목격자가 AED를 빨리 환자에게 갖다대 심박동을 되살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심정지 후 4분이 지나면 혈액 순환 부족으로 뇌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따라서 심장마비 목격자는 구급대가 오기 전에 주변에 AED가 있는지 확인해 즉시 사용해야 한다. 더욱이 심장마비는 뇌졸중, 뇌출혈 등과 달리 적절한 응급조치만 취하면 큰 후유증 없이 회복할 수 있다.

가천의대 길병원 이근 응급의학과 교수는 "설사 AED를 심정지 환자가 아닌 무의식 환자에게 갖다 대더라도 아무런 해가 없다"며 "누구나 AED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귀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스에서 꺼내 안내방송대로

목격자는 먼저 주변 사람에게 119 신고를 부탁하고 환자의 의식 상태와 심장 박동을 확인한다. 심박동은 목젖 옆으로 손가락 두 개 너비 떨어진 곳을 검지로 10초 이상 눌러 확인할 수 있다. 심정지로 판단되면 AED가 비치된 박스를 열어 AED를 꺼낸다. 이때 알람이 울릴 수 있으나 이는 환자 발생을 외부에 알리는 신호이다.

AED를 환자 머리맡에 두고 시작 버튼(또는 1번 버튼)을 누르면 안내 방송이 시작된다. "패드를 환자 가슴에 붙이세요."(두 개의 패드 겉면에는 부착 위치가 그려져 있다) → "패드 커넥터를 점멸등 옆에 꽂으세요."(커넥터를 전구가 반짝거리는 곳의 구멍에 꽂으면 된다) → "분석 중입니다. 접촉금지"(10~20초 동안 환자의 심전도를 분석하니 손을 떼고 기다리라는 뜻) → "제세동(전기 충격)을 해야 합니다. 환자에게서 떨어지세요." → "충격 버튼을 눌러주세요." → 버튼을 누르면 전기 충격이 발사된다.

이후 환자에게 AED 패드를 그대로 붙여 놓으면 2분마다 환자의 심전도를 분석한다. 그때 충격 버튼을 또 누르라고 하면 다시 누르면 된다. 목격자가 심폐소생술을 할 줄 알면, AED가 심전도 분석을 위해 환자에게서 떨어지라고 할 때를 제외하고, 흉부 압박 30회와 인공호흡 2회를 구급대가 올 때까지 반복하면 된다. 만약 AED에서 심전도 분석 후 "제세동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나오면, 환자는 심장마비 상태가 아니거나, 회복된 경우다.

유동인구 많은 곳에 AED 더 깔아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난해부터 터미널, 경기장, 경마장 등 다중이용시설은 AED를 비치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 6월 말 현재 전체 대상지 1만3623곳 중 AED가 있는 곳은 2647곳으로 아직 19.4%에 머물러 있다(보건복지부 실태 조사). 한 대에 약 300만원 하는 AED 구매 비용이 자비(自費) 부담인 데다, 설치하지 않을 경우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AED 관리 지침을 강화하고, 8월부터 예산 30억원을 투입해 AED 구비 지원과 홍보 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지하철역, 호텔, 수영장, 박물관, 골프장, 간이역 등에도 AED를 비치하고 있다.

대한응급의학회 유인술(충남대 의대) 기획이사는 "공공시설에 AED 비치를 점차 늘려가면서 해당 기관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AED 사용법과 심폐소생술 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폐소생술 할 줄 모르면 흉부압박만 해도 효과"
심정지 후 8분 이내는 체내에 산소 남아있어…

"심폐소생술을 할 줄 모르면 흉부압박만이라도 하세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목격자가 심장마비 환자에게 흉부압박만 제대로 해도 소생률이 급격히 올라간다고 말했다.

심정지 후 8분 이내는 체내에 산소가 남아 있기 때문에 흉부압박만 해도 흉부압박 30회와 인공호흡 2회를 반복하는 원칙적인 심폐소생술과 큰 차이 없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심정지 환자를 발견하면, 119에 먼저 신고를 한 후,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흉부압박만은 꼭 해야 한다.

압박 요령은 이렇다. 먼저 환자를 바닥이 딱딱하고 평평한 곳으로 옮기고 나서 윗옷을 벗긴다. 목격자는 환자 상체 옆에 가슴을 바라보고 앉는다. 압박 위치는 성인의 경우 양쪽 젖꼭지를 이은 선과 가슴뼈 중앙이 만나는 지점이다. 대개 명치에서 손가락 두개 넓이 위쪽이다.

압박은 왼손바닥을 밑으로 하고 오른손을 위로 덮고 손가락은 깍지를 낀다. 양팔이 환자의 가슴뼈와 수직이 되도록 쭉 편 후, 팔을 굽히지 말고 엉덩이와 허리 반동으로만 누른다. 왼손바닥의 두툼한 부분이 환자의 가슴뼈 밑으로 4~5㎝ 깊이까지 내려갈 정도로 힘 있게 눌러야 한다.

누르는 속도는 60초에 100번이다. 매번 누르고 나서 원래 위치로 충분히 돌아오고, 다시 그 깊이만큼 눌러야 효과가 좋다. 자칫 누르는 위치가 바뀔 수 있으니 왼손바닥은 항상 환자 가슴뼈 압박 위치에 닿아 있어야 한다.

☞자동 제세동기 (除細動器·AED:Automated External Defibrillator)

자동으로 '세동(細動)'을 제거하는 기계라는 뜻. 심장은 일정한 전기 신호에 따라 박동하는데, 심장마비가 오면 심장은 바르르 떨듯이 '미세한 진동(細動)' 상태로 있다가 결국 심정지 상태에 이른다. 그 단계에서 외부 전기충격을 주면 심장박동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수 있다.